
고린도전서 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May 6, 2023. SaturDevo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은 특정 장소나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관습에 적응하고 그들처럼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한 월남인 영어 선생이 태국에서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그가 학생들에게 숙제를 내주면 태국학생들은 제때에 숙제를 제출하는 사람이 몇 안되었습니다. 그 선생은 숙제를 내 줄때 마다 제출 날짜를 맞추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며 하루 늦을때 마다 1점씩 감점하겠다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늦게 제출하면서도 감점을 피하기 위하여 핑계를 댔습니다. 선생은 어떻게든 이 버릇을 고치기 위하여 늦게 제출하는 학생들에게 핑계에 상관없이 규칙에 따라 감점을 하였습니다. 항의 하는 학생에게 그는 “I don’t care”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선생의 작전은 성공이었습니다. 늦게 제출하는 학생들이 더 이상 핑계를 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선생은 코스가 끝날 때 자신의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 결과를 받고 실망합니다. 그들의 평가는 그가 무엇을 가르쳤느냐에 대한 언급은 없었고 대신 그가 태국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으며, 무자비하게 면전에서 그들을 거부 했으며, 그가 태국의 특정 교사 윤리 강령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태국에서 가르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묻습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놀라운 대답을 하십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마22:21). 사도 바울도 때와 장소를 제대로 이해하고 자신의 복음전파에 적용하며 걸림이 없이 자신이 목적한 바를 이루어 나가는 모습을 봅니다.
고린도전서 9장 19절은 그가 모든 것으로 부터 자유로우나 자신이 지향하는 목적, 목표(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위하여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로마 사람으로써 로마법외에는 무엇으로 부터도 자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써 하늘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하늘의 백성을 불러 모으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선한 목적을 위한 사도 바울의 열정을 봅니다.
그는 유대인 이었을 지라도 유대 율법에 얽메이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유대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율법을 존중하는 사람이 됩니다. 또한 그는 율법없는 이방인들처럼, 율법없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율법없는 이방인처럼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리고 그는 약한자들 처럼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약한 사람과 함께하며 그들을 구원하는 사람이 됩니다.
바울은 유대인이었습니다(고후 11:22, 갈 1:13, 빌3:5). 그리고 그는 유대인으로 유대의 유산을 가치있게 여겼습니다(롬9:3-5).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께 받은 계명을 가치있게 여기고 지켰고,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귀하게 여기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그 계명과 약속이 성취된 것을 알았습니다(엡2:14-15). 그래서 그 계명에 억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아직 모르는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파하려고 그가 그들과 함께 있을때 율법에 매인 사람처럼 행동합니다(고전 19:20)
그는 이방인과 다르게 하나님으로 부터 율법과 약속을 받은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방인과 함께 있어 복음을 나누어야할때, 율법을 받지 못했던 이방인 처럼 행동하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고전 19:21).
바울은 약한자가 아닙니다. 빌립보서 4:12에서 그는 자신을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그는 빈약을 뛰어넘은 진정 풍요한 자였습니다. 지식과 믿음이 넘치는 사람이었지만, 지식과 믿음이 약한 사람들과 함께 할때, 그들을 복음으로 변화시켜 복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기 위하여 가난한 사람, 낮은 사람, 믿음없는 사람의 눈 높이 에서 행동합니다(고전 19:22). 젠체(snobbery)를 좋아하는 몇몇 고린도 교회 사람들에게 말로 충고한 것을 행동으로 실천합니다.
월남인 영어 선생은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시험에 빠지지 않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리는것이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일이 그의 사명이었습니다. 특정한 장소나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배려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순적히 그들을 얻기위해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복음에 참여”한 방법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지혜는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지 않는 은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