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February 7, 2026. SaturDevo
내가 태어나는 순간에도 세상은 존재해 있었고, 세상 돌아가는 복잡한 원리원칙과 법과 도덕과 풍속이 존재해 있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점차 차라면서 내 부모를 통하여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배웠고, 가족속에서 조금씩 세상을 이해하게 되고, 학교라는 시스템을 통하여 세상속에서 내가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나에 부모형제가 나에게 한꺼번에 모든것을 가르쳐주지 않고, 단계적으로 가르쳐 주었고, 나도 한꺼번에 세상을 이해하지 못했고, 하나 하나 배워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기독교를 점진적 계시(Progressive Revelation)의 종교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아직도 진보(Continuously Progress)하고 있는 종교는 아닙니다. 성경은 계시가 완성되었음 (Cessationism)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로 시작된 계시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으로 완성된 것입니다.
창세기 1:1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문장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모세가 쓴 글입니다. 모세가 이 문장을 썼을 때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지가 수천년, 또는 수억년이 흐른 뒤였지만, 하나님은 이때 모세를 통하여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자신이 하신일을 계시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모세의 첫 문장에도 하나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이심이 분명하다고 믿을 수 있는 근거가 보여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일신교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또다른 일신교를 주장하는 유대교와 모슬렘과 독특하게 구별되는 점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일신교입니다. 그것이 유대교나 모슬렘도 믿는 창세기의 1장 1절에 언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다른 일신교들도 받아들이고 있는 구약의 여러 군데에서 언급되어 오다가 1500여년 후 신약에서 예수님이 오시면서 분명하게 보여지고 있는 교리(Doctrine / Dogma)입니다. 이 교리는 그 사실를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알수 있고, 이해하고 있지만, 아직도 이성적으로 또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교리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구약을 통하여는 어렴풋이, 부분적으로 언뜻 언뜻 나타난(Revealed) 교리입니다.
Dennis Prager의 <Genesis. God, Creation, and Destruction>를 읽다가 전에 보았던Clayton Jackson Killion의 블로그를 기억하고, 다시 한 번 들춰보며 내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해 봅니다.
Prager의 설명에 의하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은 현대어로 쓰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라는 과거 완료입니다. 창세기 1:2절로 넘어가기 전에 하나님은 세상 모든것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두분 이상의 사람(Person)이시라는 것을 모세는 엘로힘(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쓰므로 나태내고 계심니다. 그리고, 그 앞 단어인 동사 바라(만들다)는 삼인칭 남성 단수라는 것입니다. 히브리 언어는 주어와 동사, 형용사의 수가 일치되어야 하는데, 주어는 복수인데, 동사는 단수를 사용한 것입니다. 즉 구약의 엘로힘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나타내는 단어라는 것입니다.
주어가 복수인 것은 히브리인들이 믿는 하나님은 한분 이상으로 된 한분 하나님, 즉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동사가 단수인 것은 그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유일신이신 한분 하나님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신학박사과정에 있다고 밝힌 Killion은 그의 블로그(2-15-2023)에서 Plural of Intensive를 언급하며 Intensive Plural은 Numerical plural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여러가지 Intensive Plural를 사용한 예를 언급하며, 그들 히브리어의 모든 Intensive Plural 명사는 단수이며 단수동사나, 단수 형용사를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의 말대로 Intensive plural 명사, 엘로힘이나 아도님이 한사람을 언급한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도 언급했듯이, 엘로힘이라는 Intensive Plural명사가 이방신을 언급하는 곳에서는 복수 동사를 사용하여 둘 이상을 나타낼때도 쓰인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렇다면, 엘로힘이 둘이상을 언급할때도 엘로힘이 쓰인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창세기 1:1절에서 엘로힘은 단수 동사와 함께 쓰였다는 것이 삼위일체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없이 한분 하나님만 나타낸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Wayne Grudem은 삼위일체를 세 문장으로 정의합니다. 하나님은 세분이시다. 각각의 하나님은 각각 완전한 하나님이시다. 한나님은 한분이다. (God is three persons. Each person is fully God. There is one God.) 이 정의를 생각해 본다면, 창세기 1:1절의 엘로힘이 복수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세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유일신이시 한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동사를 복수동사가 아닌 단수 동사를 사용했다는 것이 또한 당연합니다. 그래서 이 복잡한 상황을 표현하기 위하여 기원전 1500여년전에 모세가, 복수 명사 엘로힘을 단수동사 바라와 함께 쓴 것은 놀라운 문학적 장치임에 분명합니다.
성경을 중요시 여기던 히브리인들이 이 모세의 글을 보며, 복수명사와 단수동사를 쓰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배워 후대의 히브리인들이 그렇게 썼다고 볼수 있습니다. 모세 이후의 히브리인들이 Intensive Plural을 단수동사와 쓰는 것을 기준으로, 지금 모세의 글을 판단해는 것이 맞을 까요?
점진적 계시로 인류를 깨우쳐오신 하나님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시며, 이제서야 분명하게 삼위일체를 신약성경을 통하여 언급하셨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은(히13:8) 인류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상상조차 못하였을때 조차도 틀린말은 쓰실 수 없어, 복수명사에 단수 동사를 쓰는 식으로 진리를 말씀하셨다고 믿습니다.
킬리온이 언급했듯이,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눅10:26) 는 구절은 다시한번 성경을 읽으며 읽는 우리에게 물어야 할 질문인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직도 성경의 모든 구절을 분명하게 알 수는 없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긍정하고 발전하는 방향으로는 읽어야 할줄 압니다.
하나님의 점진적 계시와 우리의 점진적 이해입니다.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전 13:10-1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