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번영이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것을 증명합니까?

6-12-2021

아모스 2:6-8, 이는 저희가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내며, 겸손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부자(father and son)가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모든 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저희 신의 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 

SaturDevo

이것이 아모스가 사역하던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졌던 믿음이었습니다. 아모스가 사역하던 시대(760-750BC)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던 시대였습니다(암1:2). 40여년을 같은 왕이 통치하며 정치는 안정되었고, 거기에다 이집트, 앗시리아, 바벨론 같은 큰 주변 왕국들은 이스라엘을 공략할 처지가 안될만큼 약화되고 자신들의 내정을 정비하기에 바빠서, 외세의 침입이 없었고, 이스라엘과 겨루던  다메섹 아람까지 싸워 승리를 거두며, 역사 이래 가장 넓은 영토까지 확장하며 이스라엘은 전례없는 경제 번영을 누리게 됩니다. 40여년전 엘리사는 이스라엘의 재기를 예언했었고 (열하13:17-18), 요나도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했던(열하 14:25)것을 기억하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정치적으로는 안정을 확보하였고 영적으로는 자긍심(Pride)으로 차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솔로몬 이래 최고의 번영을 누리게 됩니다.

이 번영은 부자들로 하여금 사치와 탐욕으로 물들게 하고, 지배계급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부패를 일삼으며 더 많은 부을 모으기에 급급하게 합니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죄악과 불의가 난무하는 세상이 되며, 빈부의 격차는 날이 갈수록 심해 집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더욱 고통스러워 지고, 불공평을 당하지만 어느하나 그들을 핍박과 비참함을 신경써 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돈이 모든것 위에 있습니다.  오늘날 잘산다고 자부하는 나라들의 실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아모스 선지자를 보내 이들의 행태를 직설적으로 책망하며 심판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내며, 겸손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부자(father and son)가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모든 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저희 신의 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 (아모스 2:6-8).

여기서 우리가 잘못이해하지 말아야 할 말은, “서너가지 죄”입니다. 이 시적 표현(Poetic expression)은 이스라엘의 죄뿐만 아니라, 주변 일곱나라의 죄를 언급할때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서너가지 죄’라고 하면 많지 않은 죄라는 의미로 들리는데, 히브리어에서 ‘서너가지(for three sin and for four)’의 의미는 ‘넘치는, 셀수 없는’이란 의미입니다. 히브리어로 셋은 복수를 의미하고, 그것에 다음 숫자 4가 더하여지며, ‘넘치게, 셀수도 없이 많은’ 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잠 30:15, 18, 21). 뇌물이 성행하며, 돈 몇푼(신 한켤레)을 주머니에 넣기위해서 인신매매를 하고, 있는 자들의 욕심은 끝이 없고, 불법이 법이되고,  성을 타락할 대로 타락하며, 종교 지도자들도 타락하여 하나님을 우상대하듯 조종하며 돈벌이의 수단과 괘락의 도구로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3장부터 6장까지 나열하고 있는 그 죄는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을 질책하는 아모스 선지자가, 교만으로 들어차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우상숭배를 구별못하는 이스라엘에게는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벧엘 신전 (여로보암1세가 유다와 갈라지면서 세운 신전)의 제사장 아마샤는 대꾸합니다.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서나 예언하고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왕의 궁임이니라” (암 7:12-13). ‘우리가 이렇게 부유하게 잘 사는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기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과연 잘 산다는 것이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증거가 됩니까?

아모스는 아니라고 외칩니다. 가난한자, 소외된자, 한계인의 실상을 파헤치면서, 이스라엘은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암5:2). 포로로 사로잡혀가고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왕하 17:6, 암5:5, 27). 그리고 이 예언은, 30년이 채 안되어 현실로 일어납니다. BC 722 년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고 사마리아성은 함락되고 이스라엘의 부자 지식인 종교인등 쓸 만한 사람은 모두 사로잡혀 앗수르 곳곳으로 끌려갑니다(왕하 17:6).

교만(Pride)이나 부는 그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성은 그것들을 바르게 사용도록 놔 두지 않습니다 (잠18:12, 마19:23). 특히 영적 교만이 부와 함께 올때 그 위험성은 최고점으로 올라갑니다.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죄성이 없어지지 않는 한 진리입니다. 그래서 아모스 선지자는 말합니다.

  1. 모두가 죄인이다. 이스라엘을 포함하여 주변 7개국(모든 사람이란 뜻)의 ‘세네가지 죄’(많은 죄 + 1)를 언급합니다.
  2. 공의를 행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라 (암5:15). 복음입니다.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라고 합니다.
  3. 열방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다윗의 장막)가 세워질 것이다 (암 9:11). 사도행전 15장 16-17은 아모스서를 인용하며, 다윗의 후손을 통하여 이방인들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심을 말씀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 되었음을 말합니다.
  4. “주의 날,” 종말이 임박했다 (암 5:18-20). 이스라엘에 임박한 종말을 예고하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세상의 임박한 종말을 생각하게 합니다.

아모스서는 우리가 부자로 잘 사는 것이 하나님을 잘 믿는 증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특히 많은 재물이 자긍심과 함께 올때, 자신을 돌아보고, 주위를 둘러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사랑인 복음을 구하여야 합니다. 최고의 번영을 누리던 이스라엘 속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해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세대를 살고 있습니까?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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