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May 4, 2024. SaturDevo
과학 문명이 크게 발전한 현대에도 많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를 기복신앙 또는 고대 수호신앙과 동일 선상에서 받아 들이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니까 복을 받을 것이라든가, 또는 사업이나 자녀들이 잘 될 것이라든가, 또는 모든 불행이나 재앙으로 부터 보호 받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기독교에 접근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행태를 예견하고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건전한)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딤후4:3-4). 진리를 찾고, 진리를 믿을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조종하고 진리를 이용하여 사욕을 채우려고 시도합니다.
사도바울은 기독교 최고의 사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모든것을 포기하고 복음 전파에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입장에서 본다면 오른팔과 같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그가 육체의 가시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 육체의 가시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일을 하는데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그것을 위하여 세번 기도하였다고 합니다(고후 12:8). 사도 바울도 자신의 불편함을 전능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간절히 기도로 부탁하여 고치고 싶었는가 봅니다. 사욕은 아닐지라도 인간적인 생각은 예수님이 들어 주실줄 믿을 만한 간구기도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번영이나 치유 또는 어떤 혜택이 믿음이 깊고 신실한 사람들에게 주어진다는 가르침은 비영적일 뿐만 아니라 비성경적입니다. 바울의 경험은 사람의 허탄함이 아무리 정교하고 합리적으로 꾸밀지라도 하나님을 조종하고 움직이게 할수 없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 중 하나입니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의 세상적인 삶에서 어떻게 일하시는지에 대한 몇 가지 진리를 드러냅니다.
첫째, 하나님은 자신의 의로우신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사탄의 사자(12:7)까지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일과 종들을 괴롭히려는 그들의 시도는 하나님의 정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하나님의 전략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에 사용된 가롯 유다가 그렇고, 빌라도가 그렇게 사용됩니다.
둘째,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항상 하나님의 전체를 포괄하는 큰 뜻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믿는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 달라는 간구에 그 고통이 사탄에게서 나온 것이든 아니든에 상관없이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고난이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더 의지하도록 돕는 다면, 궁극적으로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정확히 믿는 사람들 안에서 성취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주된 관심은 믿는 사람들의 편안하고 여유로운 이세상의 삶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은 믿는 사람들이 가장 약한 곳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약한 곳에서 그리스도께서 강해지도록 허락하고, 우리가 그 약함을 경험하도록 허락하신 것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간구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분명한 “아니오”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의 목적이 겸손을 유지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바울의 삶에 있는 이러한 지속적인 약함은 그가 자만하지 않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 육체의 가시는 사도 바울이 최고의 그리스도의 종이 되도록 이끄는 하나님의 격려였습니다.
우리의 얄팍한 신앙으로 하나님을 조종하고 이용하여 강해지려고 하는 대신, 우리를 비우고 하나님께 내어 드림으로써 우리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가시도록 겸손하게 허락하는 것이, “내가 약한 그때에 내가 강함이라 (when I am weak, then I am strong)”는 고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