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주일

예수 그리스도, 죽음을 이기시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고전 15:13-14).

복음서들의 마지막 장은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요한 복음은 마지막 두장을 부활사건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즉 성경에 총 다섯장이 부활사건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들을 처음 읽으면 모두 다른 소리를 하고 있는듯 하나, 천천히 반복하여 몇번 읽으면 전체적인 윤곽이 들어납니다.

먼저 보이는 패턴은 부활사건의 Outline 입니다.  우선 여자들이 아침일찍 무덤으로 가서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듣고 처음 전하게 되며, 여자들이 먼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 형태로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만나 자신의 부활사실을 확인시키시고 마지막에 사명의 말씀을 부탁하십니다.  거기에 더 해지는 사건이 마태복음에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의 보고를 들은 제자장들의 사악한 반응 과 요한복음 21장에  디베랴 바닷가에서 제자들을 만나는 상황입니다.

마태, 마가, 요한은 갈리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으로 끝나는데, 누가복음은 유대에서 만나고 승천하는 장면까지 언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사역을 갈리리에서 시작해서 갈릴리에서 끝내려는 의도와, 유대에서 시작해서 유대에서 끝맺음을 하려는 누가의 의도된 나열로 보고 있습니다.

또다른 특징은 복음서가 예수님과 먹는 장면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막16:14, 눅24:30.41, 요 21:12) . 이것은 육신의 부활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단지 영이시라면, 음식을 섭취하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예수님과 같은 모습으로 부활하셨지만, 틀린것은 돌아가시기 전에는 죽을 육신을 가지셨었고 부활하실때는 썩지 않을 영생할 육신을 가지셨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장래 모습입니다(요일 3:2).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영생할 우리의 모습은 지금과 똑 같으나, 썩지 않을 몸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것입니다. 하나님은 처음에 우리를 죽는 존재로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이들고 병드는 것도 없었습니다. 죄로 인해 우리는 죽음의 노예가 되었었으나, 예수님의 죽음으로 우리는 죄에서 해방되었으며, 부활은 우리의 영생을 확증하셨습니다 (사도신경 마지막 부분). 한편 부활하신 예수님은 전에 한번도 하신적이 없는 일, 잠긴 문을 통과하여 들어 오십니다 (요 20:19).  예수님은 100% 하나님이시지만 또한 육신을 가진 100% 사람이심을 확인하고 계십니다.

여인들이 부활소식을 처음 접하고, 예수님을 만나는 의미는 마가복음 16:7에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가서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다시쓰면, ‘가서, 전하라, 예수님의 말씀을’, 어떤 말씀? ‘너희들에게 전에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을 전하라’ 입니다. 1세기경엔 여자들의 말은 법정에서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런 상황에 여자에게 처음 나타나셨다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부활후 그의 사역에 여자를 먼저 쓰고 계신것입니다. 모든면에 혁신적이던 예수님은 그의 사역에도 여자들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제일 중요한 핵심입니다. 그 일을 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써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셨고, 3년 사역 동안 거듭 가르치셨지만 제자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던 가르침입니다. ‘죽으심과 부활’은 성경 전체의 정점이고,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유월절 어린 양으로 인류를 죄에서 해방시켰고, 부활은 죽음을 이기고 영생으로 인도하는 길을 열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의 죽음입니다. 고린도 전서 15장 20절은,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여자들의 입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상기 시키십니다.

그 다음 복음서들은, 모든 제자를 모아놓고 그들에게 지상 대 명령을 주시는 예수님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 28:18-20, 막16:15-18, 눅 24:46-49).  이것을 제일 잘 요약한 부분이 마태복음 28:18-20절,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입니다. 요한 복음 21장은 “내 양을 치라”(요 21:15-17) 하며 목자로 삼으심을 봅니다. 실패한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다시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고백을 들었을때, 그의 믿음위에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을(마 16:18) 기억하게 하며, 베드로에게 자신의 양, 즉 자신의 몸된 교회를 맡기는 모습을 적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엡1:20-23). 예수님이 복음 (죽음과 부활)이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관심은교회 와 선교입니다.

예수님이 부활 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다시 살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셨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이 중요하고, 예수님이 사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헛것이 아닙니다.

PS: 수난주간 말씀 묵상을 마치며…

2021년 고난주간을 맞으며 사복음서에서, 마지막 7일간동안 예수님이 가신길과 그의 말씀을 묵상하여야 겠다고  생각하면서 첫날 나의 노트에 저널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두째날 세째날까지 읽고 쓰면서 (그땐 아직 팜썬데이 몇일 전이었습니다), 갑자기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분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법을 생각하다가 블로그를 생각하게 되었고, 급히 블로그 싸이트에 싸인업을 하고 첫번째 글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부족함을 느끼고, 두렵고,  부끄럽러워,  망설이고 주저하다가 “하나님 책임져 주십시요”하는 마음으로 용기내어, 기도하며 카톡으로 제 카톡에 있는 분들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습니다. 그 능력이 어떤식으로든 이 나눔속에서 역사하셨기를 원하고 기도합니다. 정리되지 못하고 두서 없는 글, 읽어 주신 분께 감사드리고 부족한점 지적해 주시고 조언 주신분들께 또한 감사드리며, 계속 지도해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블로그 싸이트는 계속 손질하며 발전 시길 생각입니다.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하난님의 은총이 풍성한 해피 이스터 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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