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Week (Thursday)

The Big Day

목요일은 예수님께 바쁜 날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의지대로 무엇을 할수 있는 이땅에서의 마지막 날입니다. 요한복음은 이날의 예수님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13:1).

목요일은 유대력으로 첫째달 14번째 날이고, 이날 해질때에 양을 잡아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고기를 불에 구워 급히 먹는 (출 12:6) 유월절, 즉 무교절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의 사고는 무교절을 니산월( 바벨론 포로 이전에는 아빕월로 부름) 14일 또는 15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서 기자들도 당시의 사고를 반영하고 있음을 볼수 있습니다.예수님은 14일에 제자들을 시켜 예루살렘에서 유월절 음식먹을 준비를 시키십니다 (마 26:18, 막 14:13-15, 눅22:8).

저녁이 되었을때,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둘러 유대 관습대로 비스듬히 앉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를, 제자들과 나누시면서,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눅 22:19) 하시며 성찬을 제정하십니다. 기독교에는 두가지 성례가 있습니다. 하나는 세례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 마지막 만찬을 기념하는 성찬입니다.

식탁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배반할 제자의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 하듯 꺼냅니다. 배반한 제자가 같은 식탁에서 그 선생과 태연히 음식을 먹고 있다는 것은 가증과 배신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을 ‘주(Lord)’라 부르지만, 유다는 한번도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지 않고, ‘선생’이라고 부릅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식사자리에서 일어나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요 13:5). 제자들에게 섬김의 본을 손수 보이시며,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요13:14)하십니다. 발을 씻기신후 유다의 배신을 언급하신 것으로 보아, 예수님은 유다의 발도 씻겨주셨다고 가정할수 있는데, 이것이, 자신을 배반한 죄인까지도 사랑하신 지식에 넘치는 예수님의 사랑에 깊이이고(엡 3:18),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막14:21) 하신 죄인을 대하시는 예수님의 긍휼이십니다.  유다는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요 13:30)고 “저희가 찬미(sung a hymn)하고 감람산으로 나가니라” (마 26:30, 막 14:26). 예수님도 노래합십니다.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과만 계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자신이 가는 곳에 그 제자들이 올수 없다’는 말로 돌려 말하시며, “서로 사랑하라”(요 13:34)는 새계명을 주십니다.  그러나 아직도 제자들은 “저희 사이에 그중 누가 크냐?”(눅 22:24) 라는 다툼을 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가르치십니다. “나는 너희 중에 섬기는 자로 있노라” (눅 22:27) 하시며, 아버지께서 그에게 맡기신 나라를 너희에게 맡기니 섬기는 자로 큰 자가 될것을 부탁하십니다. 그러시며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마 26:31,막 14:27)라고 하십니다. 베드로는 펄쩍 뛰며 부인하지만, 인간의 연약함만 드러남을 우리는 압니다.

예수님의 목요일을 생각할때 요한복음은 중요한 책입니다. 요한복음은 총 21장으로 되어있습니다. 그중 절반이(12-19장) 예수님의 마지막 7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그중  반이상 (13장- 18:27), 6장이 목요일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히 요한복음을 목요일에 책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만찬을 마치고 임박한 일어날 일들에 제자들이 놀라고 실망할 것을 걱정하시며 여러 말로 힘을 북 돋우시고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요한은 장장 4장에 걸쳐 적고 있습니다 (14, 15, 16, 17장).  두번의 “I am” Statement(요 14:6, 15:1)를 통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신념을 심어 주시고, 성령을 보내주실것을 약속하시고 (요 16:7), 무엇이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주실것을 (요 16:23) 약속하시고,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 16:33)라고 하시며 격려하십니다. 17장에서는 소위 ‘대제사장적 기도’라고 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17장 1-5절 에서 예수님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시고, 6-19절에서는제자들을 위하여, 그리고20-26에서는 제자들의 메세지를 통하여 예수님을 믿게될 사람들, 즉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도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명의 수제자를 따로 데리고 또 기도를 드리십니다. 그곳이 겟세마니라는 곳이었는데 그 문자적 의미는 “올리브 기름을 짠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실제 기름짜는 틀이 있던 곳이라고도 합니다.  예수님의 기도,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눅22:44) 하는 모습과 예수님이 그 기도후 그곳에서 잡혀가 으스러지듯 피를 흘리며 죽음심으로, 우리는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 그곳에서 생산되는 올리브기름과 사용하는 사람의 관계를 나타내는 듯하여  겟세마니라는 장소가 예수님의 기도의 의미와 상통함을 볼수 있습니다.

그 기도를 마치시자, 유다가 큰 무리를 데리고 예수님을 체포하러 나타납니다 (막 14:44).  예수님께 다가와 키스로 인사하는 유다를 향하여 하시는 말씀,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마26:50). 여기서 “친구여” 하는 단어는 그릭어로 < Ἑταῖρε 헤타이레>입니다. 친근함이나 애정을 표현하는 단어 Philos와는 다른, 안면이 있는 정도의 관계(마 20:13, 22:12)에 쓰인 말입니다. 예수님은 잡히신게 아니라 잡혀 주신것입니다. 그러나 이순간을 마태와 마가는,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마26:56,막14:50)고 적고 있습니다.

이제 유다 무리에게 끌려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연행되어 갑니다. 예수님의 죄를 증명할 증거를 댈수가 없습니다. 결국 가야바는 대제사장으로써 묻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냐?” (마 26:63, 막 14:61). 유대 전통에 대제사장의 앞에서 거짓말을 하면 죽을수 밖에 없었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예수님은 진실을 말하였기 때문에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모독한 불경죄로 유대인들에게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선고 받습니다. 그리고 하인들에게 조롱을 당하고 모욕과 희롱을 당합니다 (눅 22:63-64. 막14:65). 종종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장담하는 사람들중에 믿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싶어서 인지, 이유없이 하나님을 모욕하고 조롱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대제사장집 하인들처럼, 안해도 될일을 해서 죄를 더하고,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들에게 사형에 해당하는 하나님을 모독한 불경죄를 얻고 있는 동안,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 그 마당까지 쫓아 들어가는 열정을 보입니다. 그러나 하인들이 그를 알아보고,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다”(막 14:67)고 말 할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16:16)라고 고백했던 믿음의 패기는 어디가고 예수님을 세번씩이 부정하는 연약하고 치졸한 인간으로 타락합니다. 그리고 닭의 울음소리를 들었을때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마26:75)하는 베드로를 봅니다. 우리는 베드로의 부정은 알고 있지만, 살아가며 순간 순간 내가 크리스찬임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때가 몇번이나 있었나 기억도 못합니다. 예수님은 이 죄까지 안고 이 아침 빌라도의 법정으로 끌려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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