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Week (Good Friday)

속죄 (Atonement)

대제사장 기도로 알려진 요한복음 17장에 기도의 첫마디는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입니다. 이사야 48:11은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하십니다. 이 기도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영광을 주고 받는다는 것은 아들의 신성을 확증 하는 말씀이며, 하나님이신 아들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온 세상을 구원할수 있게되고, 그 영광이 아버지께 드려진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구원자가 되는 일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고, 그 영화로운 일을 이루는 아들 예수님은 그 일을 통하여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유대인들에게 잡혀 제사장들 앞에 선 예수님은 ‘죽음에 해당하는 죄’, 불경죄를(마 26:66) 선고받습니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사람을 죽일수 있는 권리는 없었습니다(요 18:31). 로마는 사람을 죽일수 있는 권리를 자기들이 갖음으로 유대의 모든 일에 간섭할수 있게 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결박하여, 로마 관정으로 끌고가서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그를 고소합니다.

고소하는 상세한 과정이 공관복음서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는 없지만, 요한 복음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비교해 보면, 예수님을 끌고 가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죄목을 바꿉니다. ‘불경죄’가 아니라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한다는 ‘반란죄’였습니다(눅 23:2). 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황제에 대한 반란입니다. 로마법에 죽어야만 하는 죄입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빌라도의 질문입니다 (마 27:1,막15:2, 눅23:3, 요18:33). 예수님의 대답은 “네말이 옳도다”. 영어로는 “You have said so”입니다. 같은 말인것도 같지만, 어딘지 느낌은 다릅니다. 아마, 빌라도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형선고를 내리기를 거부합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내가 왕이다. 내 나라는 이 세상한 속한 것이 아니다’(요 18:36-7)라는 것을 밝히십니다. 빌라도는 무슨 말인지 몰랐을 것입니다. 빌라도는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다고 하자, 유대인들은 그가 유대인의 법대로 하면 죽어야 할 불경죄를 지었다고(요 19:7) 실토합니다. 빌라도는 이제 예수님의 죄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됩니다. 이제 죽일 방법이 없어 졌습니다.

그런데 군중 처럼 어리석고 군중 처럼 강한 힘도 없습니다. 유월절을 맞아 군중은 빌라도에게 갇힌사람 하나를 놓아달라고 할 권리를 갖습니다 (막 15:6, 마 27:15). 사람이 많이 모이는 명절에 군중의 반란을 무마하기 위해 로마가 백성들에게 베푸는 당근 같은 작은 은전이었습니다. 몇일전, 호산나하며 예수님의 입성을 환호하던 백성들은, 이제 몇몇의 제사장의 선동으로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죽이라고 소리칩니다 (마27:20, 막15:11). 군중의 반란을 막는것이 주임무중에 하나였던 로마총독은 그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내어 줍니다 (막15:15, 눅23:23-4). 억지로 내어 주었다고해도, 빌라도가 예수님을 죽인 죄가 없어지진 않습니다.

예수님은 또 로마 군병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채찍질을 당합니다(마 27:26  ).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형장으로 향하지만, 너무 심하게 채찍질을 당하고 피를 흘린 예수님은 자꾸 쓰러지며 시간이 지체되자, 지나가던 구레네 시몬이란 사람을 붙잡아 대신 십자가를 지게 합니다 (마 27:32, 눅 23:26). 골고다에 이르러 제삼시(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십니다. 그러나 아직도 조롱과 모욕은 끝나지 않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조롱합니다. 옆에 같이 처형 받는 강도 까지도 예수님을 모욕합니다. 이 상황을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하여 표현합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 대목에서 믿는 사람이라면, 눈물을 훔치는 척은 해야 할줄로 믿습니다.

복음서들은 ‘가상칠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중 세가지는 기도입니다. 기도! 예수님처럼 기도를 많이 한분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셨지만 기도를 그렇게 많이 하셨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서도 기도를 하십니다. 그 기도의 첫번째는 눅가복음 23:34,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들은 배우고 가르침을 받은대로 살아가는 이방인이고 유대인의 싸움에는 무관심한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은 수치와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는 중에도 예수님은 자기를 못 박은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두번째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 27:46, 막 15:34). 이 순간은 예수님이 전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있는 순간이고, 아버지가 아들에게서 고개를 돌린 유일한 순간이라고 합니다. 우리를 대신한 예수님의 고통에 제일 깊은 나락이었습니다. 또 한 기도는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눅 23:46). 캘빈은 인간의 완전 타락을 주장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 어린양으로 완전히 죽으십니다. 이제 예수님은 “다 이루시었다” (요 19:30) 하신 말씀대로 이 세상에서 더 이상 하실일이 없으신것입니다. 이제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일으키시고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제6시(12시)가 되었을때 하늘은 검어지며 제9시(오후 3시)에 “다 이루었다”하시며 숨을 거두십니다. 이순간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맡기신 일을 모두 마침심으로   말미암아 영화롭게 되었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순간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나누었던 성소휘장이, 이 순간에 둘로 찢었었다고 복음서들은 증거합니다.(마 27:51막 15:38,눅 23:46). 유대의 희생 제사 제도가 폐지되고, 예수의 피를 통하여 믿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앞에  자유롭게 나갈수 있는 길이 을 열린 것입니다.

저녁이 되자 아리마대 요셉 (요한 복음은 니고데모도 언급함)이 예수님의 시체를 내려 향료를 바르고 세마포로 싸서 새 무덤에 두십니다.

Holy Week (Good Friday)”에 대한 한 가지 생각

  1. 감사합니다. 여건상함께 미사를 남편과 할수 없었는데 점심때 상황이 바 껴서. 세시에미사를함께할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이끄심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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