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uly 31, 2021. SaturDevo
요나 4:10-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요나는 성경책을 쓴 선지자로써 유일하게 하나님께 책망받는 선지자입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요나는 책망의 대상이면서, 또한 책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넘치게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불러 무시 무시한 악의 도시 니느웨로 가서 그들의 멸망을 선포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대신 요나는 배를 타고 도망합니다 (1:1-2). 하나님은 풍랑을 보내고 결국 요나는 바다에 던져지고,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보내 요나를 삼켜 삼일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게 됩니다 (1장). 요나가 회개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구했을때, 하나님은 그 물고기로 하여금 그를 토해내게 하고 (2장), 하나님은 다시 그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3:1-2). 요나는 죽음에서 구원받는 하나님의 긍휼의 받게 되고, 그제서야 하나님의 말씀대로 니느웨로 갑니다. 그리고 놀랄만한 성공적인 사역을 마칩니다. 하룻동안의 외침으로 그 큰성읍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능가합니다 (행 2). 이것으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4장에서는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4:1) 합니다. 이유는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 (4:2)시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면서 니느웨의 멸망하는 모습을 보겠다고, 성 동편으로 가서 초막을 짓고 앉습니다. 햇볕이 내리쬐이자 하나님은 요나를 위하여 박넝쿨을 자라게 하시어 햇볕을 막아줍니다 (4:5-6). 요나를 향한 또하나의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그러나 다음날 그 박넝쿨이 벌레에 먹혀 시들자, 죽는것이 낫겠다며 성을 냅니다 (4:7-9). 요나는 다른 사람에 대하여는 정의를 부르짖고 자신에 대하여는 자비를 원하는 사람의 전형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자기에게 주어지는 것은 당연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못견디고 성을 내는 사람입니다.
요나의 경험은 선지자 개인의 경험이지만, 그 경험은 이스라엘의 국가적인 차원으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요나가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그 죄가 이스라엘의 죄입니다. 세상 어떤 민족도 경험한 적이 없는 하나님의 기적을 통하여 종되었던 애굽에서 구원받는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받은 그들은 열방과 그 사랑을 나누고 증거했어야만 했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그들 자신의 하나님으로 제한하고 배타적인 하나님으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요나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롬 3:29)라는 사실을 알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해 좌우를 분별하지 못했던 니느웨가 회개하고 긍휼을 구했을때 뜻을 돌이켜 그들을 구원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구하는 모든 피조물을 긍휼히 대하십니다.
이 사실은 요나가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선지서임을 말해줍니다. 요나의 경험은 요나와 이스라엘 국가적 차원을 넘어 그 스케일은 시간적으로 예수님이 다시오실 그때까지, 공간적으로으는 땅끝까지 연장됩니다.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마16:4). 요나의 표적은 삼일만에 물고기 뱃속에서 살아난 사건을 말씀합니다. 그 표적은 또한 중의적 의미(double entendre)를 갖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가 받는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 긍휼이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8절은 말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요나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고, 요나가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사명은 바로 우리의 사명입니다. 풍자의 대상이 되는 요나는, 하나님의 긍휼을 믿는 사람들의 배타적인 소유로 취급하는 편협하고 이기적인 이스라엘을 대표합니다. 오늘날 우리 크리스찬들을 보는 듯 합니다. 요나에게서 많은 크리스찬들의 마음속에 있는 이상한 모순을 봅니다. 우리는 예수님를 사랑하면서도 그에게서 돌아서는 우리 자신을 발견합니다. 예수님를 신뢰하면서 우리는 종종 두려움과 불안과 싸웁니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동안 우리는 때때로 우리의 삶속에서 어떤 사건에 대한 실망과 씨름합니다. 우리가 그런것처럼, 요나가 그랬습니다. 요나의 실패는 우리에게 거울이 되어 우리를 비춰보게 만듭니다. 요나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발견하기를 원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는 우리의 모든 약함과 모순과 갈등을 끌어 앉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으로 구원 받은 우리에게 복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고 나누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의 소유인양 우리만 갖고 제한 하는것을 요나는 경고합니다. 박 넝쿨이 요나것이 아니었던 것 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인 복음도 우리것이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