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살로니가전서 4:15-17 “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August 28, 2021. SaturDevo
데살로니가서를 통하여 사도 바울은 여러가지를 얘기하고 있지만, 주요 주제는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각장(each chapter)은 예수님의 재림을 언급하며 결론맺고 있습니다(1:10, 2:19, 3:13, 4:16, 5:23). 바울이 유럽땅에 들어가 처음 복음을 전한 곳은 빌립보입니다. 그러나 빌립보에서 몇일 만에 나올수 뿐이 없었고 (행 16), 장소를 옮긴곳이 데살로니가이고 데살로니니가에서도 오랫동안 사역을 할수가 없었습니다. 수주일 기껏해야 한달내외가 되지 않을까 믿어집니다(행 17:2). 그렇게 급하지만 열정적으로 교회를 세우고 데살로니가를 떠나게 되어 아덴에 머물면서 데살로니가교회가 걱정되어 디모데를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고(3:1-3), 바울이 고린도에서 사역하는 동안 그곳으로 돌아온 디모데에게 들은 소식을 바탕으로 데살로니가에 편지하는데, 그것이 데살로니가 전서입니다.
도망나오듯 급하게 빠져나온 데살로니가의 교회는(행 17:10),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참고 잘 이겨내며 신실한 교회로 바울이 가르친것을 실행하며 생활하고 있었습니다(3:6-10). 그들의 관심은 예수님을 믿다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20여년전 한국에 다미선교회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1992년 10월 28일에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한다고 믿고 법석을 떨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도 날짜는 정하지 않았지만 다미선교회 사람들과 같은 마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오늘 내일, 혹은 이번달 다음달 예수님이 다시오실것으로 믿으며 생업을 포기하고 먹고 노는 사람이 생길정도 였습니다. 그런 상황에 예수님이 곧 오실텐데, 어떤 형제들이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죽은 것입니다. 이 사람은 어떻게 될까? 신실한 형제였는데 예수님을 잘못 믿은 사람인가? 이런 저런 여러가지 의구심이 생겼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사람들의 마음에 확신을 주고 위로를 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4장 13-18절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은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행 1:9-11)는 말씀을 더 자세히 풀어 설명한 말씀으로 여겨집니다. 예수님의 재림(Parousia)을 휴거( rapture)와 다시오심( revelation of Christ)이로 더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휴거(rapture)라는 말은 그릭어’Harpazo’ 를 라틴어로 번역한 ‘Rapio’ 에서 온 말입니다. 휴거를 설명하기 위하여 전천년설을 설명해야 할듯 합니다. 요한계시록 20:6의 말씀,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을 근거로 천년왕국설을 말하는데, 예수님이 재림하는 시기에 따라 3가지 설 (무천년설, 전천년설, 후천년설)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모두를 설명하는 대신 휴거와 관련하여 전천년설만 간단히 설명합니다. 전천년설은 믿는 성도가 대환란(마 24:15-28, 단 12:1, 계7:14)를 격느냐, 안격느냐에 따라 전통적 전천년설과 세대주의적 전천년설로 나눕니다.

오늘 말씀 데살로니가전서 4:15-17 처럼 예수님께서 재림하시어 모든(죽은자와 산자) 믿는 성도들을 공중으로 끌어 올리신(휴거) 후, (A. 영접/만난후, / B. 대환란이 끝난후), 공중에 올렸던 성도들과 예수님은 이땅에 내리시어 천년동안 치리하신다는 이론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의 재림을 이렇게 자세히 풀어서 설명한 이유는 ,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4:13절)입니다. 바울은 죽은 사람이 어떻게 될것인가에 대해 얼버무리지 않고, 그들의 미래 모습이 우리 머리속에 그림으로 그려질수 있도록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다미선교회처럼 휴거를 준비하라거나 예수님이 오실 날짜를 계산해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소망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입니다. ‘소망없는 다른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위에 그려진 도식에서 보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죽은 사람도 부활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왕노릇하고, 영원한 삶을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심판을 받기위해 부활합니다. 그 심판은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마 25:46) 입니다.
바울은 18절에 결론을 얘기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사람의 끝을 분명히 알고,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절망하며 믿음을 잃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신실하게 살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의 재림을 자세히 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