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박국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October 2, 2021. SaturDevo
‘라일리’는 술에 취해 운전을 하다 다른 차를 들이 박고 체포되어 수갑을 차고 길바닥에 앉아있습니다. 건너편에서 다른 차를 운전 했던것 처럼 보이는 젊은 여자가 머리에 큰 상처를 입고 정신을 잃은 채 누워있고 구급요원들은 인공호흡을 열심히 시도하다가 포기합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라일리는 절망하며 주기도문을 외우며 기도합니다. 라일리의 상처를 보러온 경찰은 그 모습을 보며 한마디합니다. “기도하는 길에, 술 취해 음주 운전하던 녀석은 상처만 약간 나고 멀쩡한데, 죄없는 젊은 애들을 왜 자꾸 데려가는지 하나님께 물어봐라” 라고 이숙거립니다.
그 경찰관처럼, 하박국 선지자도 이해할수 없이 돌아가는 세상을 보며 하나님께 불평하고 따지고 있습니다. 죄악과 패역으로 팽배한 세상, 강포가 난무하는 세상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의롭게 살려고 하는 사람은 설 자리를 잃고 하나님의 율법은 헛소리가 되고 정의는 전혀 시행되지 않는 세상이 되었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1:2-4)하고 하나님께 따지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은 정의롭고, 공평하고, 선하시고 자비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욥이 경험한 하나님이 그렇지 못한것 처럼 보였듯이, 하박국이 경험하고 있는 하나님도 이해할수 없는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박국은 작은 욥기이고, 큐티 노트입니다. 내용면에서는 작은 욥기같고, 형식면에서는 개인적인 큐티노트 같습니다. 욥의 관심이 욥의 개인적인 일이었던 반면, 하박국의 관심은 국가적, 사회적 관심이었습니다. 하박국은 사역을 하며 설교를 한것도 아니고, 악한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것도 아닙니다. 악으로 꽉찬 세상을 보며,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 따지듯 두번 질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대답을 듣고 (1장, 2장),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비전을 보며 감사 (3장)하는 형식입니다. 하박국의 큐티입니다.
사회, 정의가 상실된 패역한 국가는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박국이 경험한 죄악이 넘치고 정의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유다의 상황은 더욱 절망적이라는 면에서 특별했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멸망했고, 요시야의 종교 개혁은 왕의 노력으로 무언가 되는가 싶더니, 요시아의 죽음으로 도로 수포로 돌아가고 우상들이 판을 칩니다. 거기에 신흥세력 바벨론은 앗시리아를 멸망시켰고, 곧 유다를 덮칠것이고, 포로가 되어 70년을 지내야 할 상황을 앞에 놓고 있습니다.
하박국의 첫번째 질문은 ‘하나님은 악한 세상속에서 고통받는 의인을 왜 구원하지 않습니까 (1:2)’ 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사납고 성급한 백성’, 즉 바벨론 느브갓네살을 일으켜 너희 강포한 자들를 심판하시겠다고 하십니다(1:5-11). 하박국은 더 헷갈립니다. 물론 유다가 죄도 짓고, 악하고, 강포한것도 맞는데, 그래도 하나님의 백성인데, 그들을 벌하겠다고 더 악한 사람들을 들어 덜 악한 사람들을 벌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까 하고 따집니다 (1:13). 하나님의 대답은2:3-4절입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묵시’는 하나님이 하박국을 통하여 유다사람들에게, 또 우리들에게 들려 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악인과 죄인을 반드시 벌하신다고 합니다. 반드시입니다. 의인만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니다. 누가 의인입니까?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아마 자기가 의인인줄 알았든것 같습니다. 유다사람이 의인이라고 생각한듯 합니다. 기도중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줄 다시한번 깨달으며(3:3-15), 간구합니다.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3:2).
하나님의 죄인을 향한 진노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에게 부어지셨습니다. 그리고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대로, 그 진노중에도 하나님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인하여 죄인들을 향하여 긍휼을 보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달리신 그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와 긍휼이 만납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십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 23:34).
브루스 허트라는 사람은 이런 말을 합니다. 몇 사람들에게 종이를 한장 주고 그 위에 곡선을 그으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단 한 사람도 다른 사람과 똑 같은 곡선을 그린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직선을 그리라면 모두가 자를 대고 똑 같은 직선을 그릴수 있습다. 욧점은 이것입니다. 죄는 수천 수만가지 틀리지만 의는하나님의 말씀 한가지입니다. 자를 대고 그려야 온전한 직선을 그릴수 있듯이, 믿음이 있어야만 의인이 될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갈 3:11). 자를 대고 그리지 않고는 온전한 직선을 그을수 없는 것처럼, 율법을 행하므로 하나님앞에서 의롭게 될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얻게 된다는 믿음으로만 살수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6-17). 모든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나타났습니다. 이 복음을 바라본 하박국 선지자는 고백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하박국 3:17-19)
사고 현장의 경찰관은 물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인을 구원하는것이 정당합니까? 대답은 ‘정당하지 않습니다’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죄인을 구원하는 일이 정당하게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