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레몬서 1:11,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October 9, 2021 SaturDevo
“나는 강해집니다, 당신의 어깨에 기댈때 / 당신은 나를 들어 올리십니다, 내가 될수 있는 나보다 훨씬 나은 나로 (I am strong, when I am on your shoulders/ You raise me up to more than I can be). Secret Garden의 “You raise me up”은 오네시모가 읊었을 법한 노래입니다. 빌레몬서는 한장 뿐이 안되는 짧은 책이지만 복음의 작동원리와 복음이 어떻게 우리 삶속에서 역사하는지의 실제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빌레몬서의 주제는 용서와 화해입니다. 빌레몬의 노예였던 오네시모는 빌레몬에게서 도망갔습니다 (15절). 그러나 어찌 어찌하여 오네시모는 로마에 있던 사도바울을 알게되고, 크리스찬이 되어 바울과 빌레몬에게 유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12절). 그리고 변화된 오네시모를 바울은 편지를 써서 들려 빌레몬에게 돌려보냅니다. 그 편지는 빌레몬에게 그를 용서하고 그를 자신이 나은 아들처럼 대해 줄것을 부탁합니다 (17절). 빌레몬이 그 편지을 읽고 오네시모를 어떻게 대해주었는지는 알수 없으나, 그 편지가 초대교회들에서 계속해서 읽혀지고, 성경의 정경이 된것으로 보아, 바울의 부탁대로 빌레몬은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화해하고, 오네시모는 많은 사람들에게 유용한 사람으로 살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요1:1) 이땅에 오시어 (100% 하나님이시고 100% 사람으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엡1:7)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우리를 (창3:22-24) 다시 하나님과 화해케 하시고 (엡2:16), 새삶으로 인도하시고(롬 6:4) 또 영생으로 인도하시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작동원리입니다. 빌레몬서는 이 원리가 우리가운데서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빌레몬과 오네시모의 관계는 주인과 종의 관계입니다. 바울은 오네시모의 도망에 대해 매우 완곡한 표현을 쓰고 있으나 (15절, 18절) 빌레몬에게 책임 (accountability)있는 종으로써 도망친 무익한 사람이었습니다. 도망간 오네시모는 로마로 가서 바울을 만나게 됩니다. 바울은 복음으로 똘똘 뭉쳐진 사람입니다. 즉 바울을 만났다는 말은 오네시모가 복음을 접하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오네시모는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 (11절)”한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이것은 당신이 어디에 가서도 자신있게 말 할수 있는 기독교의 진리입니다. 복음을 접한 사람은 변합니다. 죄인이 의인이 됩니다. 무익한 사람이 유익한 사람이 됩니다. 사악한 사람이 선한 사람이 됩니다. 미움의 사람이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가난한 사람이 부유한 사람이 됩니다. 이기적인 사람이 이타적인 사람이 됩니다. 교만한 사람이 겸손한 사람이 되고, 게으른 사람이 부지런한 사람이 됩니다. 복음을 만나고도 변화하지 않는 사람은 가짜 복음에 연결되었거나, 그 연결이 잘못되었음이 분명합니다.
복음으로 변화된 오네시모는 주인인 빌레몬앞에 서게 됩니다. 오네시모는 도망 노예이고, 주인 앞에 죄인입니다. 1세기 로마 사회에서는 도망 노예가 잡히면 그 주인에게 보통 매질을 당하고, 쇠사슬에 묶여 갇히고, 심지어는 죽임까지 당했습니다. 오네시모는 도망 노예이기에 분명히 벌을 받아야 마땅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네시모가 주인에게 내민것은 바울의 편지였습니다. 복음의 사도인 바울의 편지는 빌레몬으로 하여금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16절) 영접할 것을 부탁 합니다.
성경에는 그 종들을 회계, 또는 심판 하는 주인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마 18:21-35, 눅19장). 히브리서 9:27은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하며 우리가 죽은 후에 제일 먼저 맞다트릴 일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그 창조주 하나님께 책임(accountability)가 있습니다. 오네시모가 그 주인 빌레몬 앞에서 도망갔던 것에 대하여 회계 (잘, 잘못을 따지는것)하는 것처럼,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에 대하여 회계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람에 대하여 말하기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3:10)라고 단정합니다. 요한 복음에는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붙잡아다 놓고, 예수님께 심판할것을 요구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돌로 치라’라고 율법대로 판결하시며,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요 8:7)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요8:9)고 합니다. 성경 말씀이 아니라도 사람중에 ‘나 죄없소’하고 손들고 나올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죄인이라면 우리는 하나님앞에서 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 벌은 불 연못에 던져지는(계20:15) 영벌입니다 (마25:46). 그러나 죄인 오네시모에게 복음의 사도 바울의 편지가 있었던 것처럼, 모든 믿는자에게는 복음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있습니다.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복음은 죄인을 의인으로 변화시킵니다. 바울의 편지로 말미암아 빌레몬이 종 오네시모를 종이 아니라 사랑받는 형제로 영접했던것 처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변화된 모든 믿는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로(히 2:11-12),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십니다.
C. S. Louis는말합니다. “기독교는 사람들에게 회개할을 말하며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용서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회개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용서받을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할 말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눅5:31-32). 복음은 사람을 변화 시킵니다. 복음은 자신이 오네시모라고 생각하는 용기있는 사람에게 만 상관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