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하 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October 16, 2021. SaturDevo
기독교의 매력은 second chance에 있습니다. 성경에서 역대기는 열왕기서 다음에 나오는 역사서로 분류됩니다. 그러나 히브리성경에는 이 역대기가 성문서 (Ketubim)로 분류되며 제일 마지막 책이 됩니다. 역대기의 히브리성경 이름은 ‘역대지략’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대상27:24). 이 역대지략이 칠십인역(Septuagint)로 번역될 때 ‘유대왕에 관하여 빠진 것들’이란 제목으로 번역되고, 이 이름은 기독교성경에서 역대기가 열왕기 다음에 놓이는데 한 역할을 하게됩니다. 그리고 제롬이 번역한 Vulgate 성경에서 ‘총체적인 신성한 역사의 역대기’라는 제목을 얻게되고, 여기에서 ‘역대기’라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책제목을 갖게됩니다. 이 위치와 제목의 변경은 내용은 같을 지라도 역대기를 읽는 사람들에게 신학적 문학적 해석에서 여러가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에스라-느헤미야서와의 관계를 보면, 기독교성경에서는 역대기가 에스라-느혜미야서 앞에 나오는가 하면, 히브리성경에서는 에스라-느혜미야서가 역대기 앞에 나와 있습니다. 기독교성경을 읽는 사람은, 칠십인역의 책 제목대로, ‘열왕기와 반복되는것도 있지만, 열왕기에서 빠진 것들을 쓴것이로구나. 이스라엘 왕정에 역사는 열왕기와 역대기 두가지가 있고, 이에 이어, 에스라 느혜미야로 이어지는 구나’ 하고 생각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성경을 읽는 사람은 ‘우리가 다 아는것을 성경 끝에다 왜 다시한번 읽게 만들었을까?’를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열왕기에 질문이 ‘무엇이 잘 못 되었나?’였다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씌여진 역대기의 질문은 ‘이제 어떻게 하지? (Now what?)’라고 말 할수 있습니다. 고레스 왕의 공포로 (대하 36:22-23, 스1:3)이스라엘 사람들은 포로생활에서 자신들이 떠났던 땅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회적 종교적인 일에서는 자치권은 허락 받았으나 정치적 군사적인 면에서는 총독의 감독하에 있었습니다. 온전한 독립국가는 아니었습니다.
1차 포로 귀환은 BC 538년에 스룹바벨과 함께 돌아온 사람들입니다(에스라 1장). 이들은 성전 건축을 시작합니다 (스3:8). 그리고 2차귀환은 457년에 에스라와 함께 이루어지고 (스7:1-10), 3차귀환은 445년 느헤미야와 이루어집니다(느1:2). 유다백성이 포로로 잡혀 떠난 땅은 모든것이 무너진 황폐한 땅이 됩니다. 다른 민족들이 들어와 살았지만 건설하고 정비한 땅은 아니었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이들의 정착은 많은 난관과 부디쳐야 했습니다. 성전도 세워야 했고, 살집을 세워야 했고, 정비된 공동체를 마련하는 일은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538년 시작된 성전건축은 유다백성이 잡혀간후 그땅에 살던 들어와 살던 사람들의 방해로(스 4장) 20여년을 지체해서 515년에야 완성하게 됩니다(스6:15). 에스라는(스7장) 공동체의 순수성을 지키게 하기 위하여 진통을 격어야 했습니다(스 10장). 느혜미야는 성벽을 건설하지만, 사마리아의 산발랏과 에돔사람 도비야와 아스돗사람들은 방해공작을 합니다 (느4:1-8). 느헤미야의 용기와 지혜로 52일만에 성벽 공사를 끝내지만, 그 성벽이 오죽하였겠습니까? 그런 와중에 백성들은 포로에서 돌아와서 여러 공사에 내 모는 지도자들을 원망하고 유다와 차별한다고 불평하고, 배고프다고 부르짖습니다, (느5:1-5). 이것이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사람들의 실상이었습니다. 그들이 돌아온 땅은 그들이 떠났던 땅과는 딴 판입니다. 그들의 삶도 생각했던것과 같지 않습니다.
그들의 질문은 ‘Now what?’이었습니다. 꿈을 가지고 포로생활에서 돌아왔는데, 포로 생활보다 더 힘듭니다. 절망합니다. 의욕도 잃었습니다. 성전도 세우고, 성벽도 세웠지만 그것때문에 더 나아진것도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지배자들은 피지배자들을 억누릅니다. 부자는 가난자를 핍박합니다. 불공평이 판을 칩니다 (말라기서).
이런 상황에서 역대기는 씌여집니다. 역대기는 크게 세파트로 나눠집니다. 역대상 1-9장까지는 끝없는 족보를 늘어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족보에서 찾아내는 사람은 다윗입니다. 두번째는 역대상10장부터 역대하9장까지 는 다윗과 솔로몬과 성전 이야기가 자세히 언급됩니다. 마지막 세번째 파트는 역대하 10-35장까지 나머지 유다왕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가 포로에서 돌아와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역대기기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광야에서 40년을 헤메고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명기를 들려주었던 모세처럼, 이스라엘 역사를 들려주며 그들의 역사속에서 일하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다시한번 일깨웁니다. 그래서 다윗과 솔로몬과 성전은 열왕기에서 보다 더 자세히 촛점이 맞춰집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던 아사와 여호사밧 히스기야와 요시아에 대하여도 다른 왕들에 비해 더 많은 설명을 할애합니다. 열왕기에서 므낫세는 유다를 망친 역적이지만, 역대기에서는 그런 죄인중에 죄인도 회개하고 돌아설때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왕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대하33:12-19). 이렇게 역대기는 다윗 왕과 솔로몬 성전에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끝없는 족보에서 찾아낸 다윗과 <첫째 파트> 다윗에게 하신 하나님의 언약(약속)을 기억나게 하고 솔로몬 성전의 능력을 기억하게 합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대하7:14) <두째 파트>. 그리고 세째 파트에서는 하나님앞에 신실했던 왕들보다 불신의 왕들이 더 많지만, 불신의 왕중에도 유다에 돌이킬수 없는 심판을 가져오게 한 므낫세도 회개하였을때 하나님과 화해하는 모습도 언급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장의 끝부분은,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이야기합니다. 70년후의 유다에 관한 일(렘 25:12-13)과 믿는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렘29:11-13). 역대기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미래 희망과 가능성을 알고 다시 일어서라고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히브리성경의 마지막 책 마지막 구절은 슬럼프에 빠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희망과 가능성을 약속하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올라 갈 지어다”(Let him go up/ESV) 라는 말로 끝납니다.
신약으로 이어지는 마태복음은 또 족보의 나열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국 찾아내는 이름은 “예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하나님이 하신 말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예 31:31-33)의 성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새 언약를 맺으신 유다집, 다윗의 자손이시고, 진정한 왕이고, 대제사장이며, 결코 무너지지 않을 성전,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우리가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수 있는 힘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올라갈 지어다 (Let him go up).” 히브리말로는 “ וְיָֽעַל (와야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