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스라 7: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느헤미야 8:8, (에스라가) “하나님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매”
November 6, 2021. SaturDevo
에스라-느혜미야서를 읽고 있으면, 전쟁 후 복구에 매달리고 있는 패전국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런 주제의 영화들은 대개 그 구성이 비슷합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들은 미국의 도움으로 복구에 매달리는데, 그들은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세우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폐허속에서 그 폐허를 걷어내고 다시 도시를 세우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의 노력 가운데는 항상, 새로운 건설의 주변에서 노력은 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권에만 눈이 멀어있는 악한들이 있고, 부패한 관리가 있습니다. 자신들의 배만 채우려고 하고, 자신들의 세력만 늘리려고 합니다. 그런 가운데 주인공과 몇명만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며 목숨을 걸고 바른 나라 건설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70년의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버려졌던땅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70년은 느브갓네살의 시위대장 느브사라단이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을 헐어 폐허로 만든 BC 585년부터 (왕하 25:8-12) 포로에서 돌아와 천신 만고끝에 성전을 다시 세워 봉헌한 BC 515년까지(스6:15-16)를 말합니다.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이 헐리고 백성들은 거의 모두가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고 “그 땅의 비천한 자를 남겨 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왕하 25:12)된 몇사람 뿐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버려진 땅이 되고, 가나안땅의 중심지는 사마리아가 됩니다. 고레스의 포고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돌아온 땅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70년동안 버려졌던 땅, 사는 사람도 없던 곳 이었습니다.
이민을 와도 사우스타코타같은 황량한 곳으로 가지 않고, 시카고나 LA, 뉴욕같은 사람이 모여 사는 곳으로 가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에서 돌아와 예루살렘땅으로 갔다는 말은 사명없이는 불가능했다는것을 짐작할수 있습니다. 성전을 세우기 위하여 1차 귀환이라 불리는, 스룹바벨과 돌아온 사람의 수는 49,897 명입니다(스2:64-66). “이스라엘 자손이 각자의 성읍에 살았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인지라” (스3:1). 각각 흩어져 살던 귀환 이스라엘 사람들은 7달이 지나서야 예루살렘에, 그러나 지금은 폐허의 땅에 모입니다.
이들은(1차귀환) 성전을 세우고, 에스라(2차귀환)는 컴뮤니티를 정화하려고 노력하고, 느헤미야(3차귀환)는 성벽을 쌓습니다. 이 이야기가 에스라-느헤미야서의 100년에 걸쳐 이루어지는 바벨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 재건의 모습입니다. 이 모든 사건과 되어지는 일들속에 하나님이 끝까지 함께 하시며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향한 사랑과 긍휼을 보이십니다. 그러나 그런 하나님의 사랑(steadfast love)를 인지하는 사람은 단지 포로 귀환의 영웅들뿐입니다.
그들은 여러가지 악 조건을 극복하고 불타고, 무너진 잔해 밖에 없던 예루살렘에 성전과 성벽을 쌓고 모세가 전해준 율법대로 성전 중심의 희생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를 꿈꾸며 내노라 하는 백성으로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녹치 못했습니다. 사람의 죄성은 바뀌지 않았지만 시대는 바뀌었습니다. 포로에서 자기땅으로 돌아오기는 하였지만 그들은 아직도 거대한 제국 페르시아의 통치아래 있습니다. 그런 중에 많은 이스라엘 백성은 편리를 추구합니다. 그들은 자꾸만 이방 사회속으로 들어갑니다 (스9:1). 백성의 방백과 제사장들은 백성들을 늑탈합니다(느5:7). 이스라엘 속에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고통을 받습니다 (느5:2-5). 제사장들이 부패하고 백성이 성전을 떠나고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가 형식으로 전락하는 모습이 말라기서에는 적나라하게 표현됩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에스라가 결심한것은 말씀을 놓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back to the basic).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스7:10). 에스라는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이어가고 지키는 것은 말씀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에스라가 결심은 3가지로 요약됩니다. 율법의 연구(studying)와 준행(doing)과 가르침(teaching)입니다. 이것은 그 당시 뿐만아니라 오늘날에도 모든 믿는 사람들이 적용해야할 가르침입니다. 크리스찬이 크리스찬 되기 위한 기본입니다.
COVID 19으로 인해 많은 교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많은 교인들이 자연스럽게 교회를 멀리한다고 합니다. 어려운 때 일수록 믿는 사람이라면 다시 한번 에스라와 같은 결심이 필요합니다. 말씀이 성전과 제사장들만의 소유였고, 글을 아는 사람도 드물었던 당시에는말씀을 공부하고 행하고 가르치는 일이 제사장이나 에스라같은 학사의 일이 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모든 사람들의 손에 성경이 들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말씀대로 살고,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전하는 것은 모든 크리스찬의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자를 ‘왕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셨습니다. 크리스찬의 정체성은 말씀을 공부하고, 말씀대로 살고, 말씀을 전하데 있습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