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삶의 욧점은 무엇일까요?

창세기 14:19-20,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January 22, 2022. SaturDevo

지피지기면 백전 백승(불태)이란 말이 있습니다. 손자가 한 이 말은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여 즐겨 사용하지만, 정작 이 말을 전투나 사람 관계에 적용하려면 쉽지는 않습니다. 요즘은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바른 정보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하고, 또 그 정보를 이용할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정보를 취사선택하여야 하는데, 우리는 어떤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받아들이고 싶은 사실은 받아들이지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사실은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인정한다는 것은 어떤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형이하학적 사실을 구분하는데 훈련된 사람들은 종종 형이상학적 사실을 인정하는데 실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BC 2000년 경에도 같았습니다.

창세기 14장은 몇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노아를 통한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알게해 줍니다. 두번째는 하나님의 약속에대한 아브람의 신실한 믿음을 보여주고 있고 세번째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멜기세덱과 아브람의 아름다운 축복입니다.

14장은 두 연합군의 전쟁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두 연합군의 구성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한쪽은 함족이고 한쪽은 셈족이 됩니다. 가나안땅의 소돔왕, 고모라왕, 아드마왕, 스보임왕, 소알왕은 12년 동안 셈족 계통의 왕인 그돌라오멜을 섬겨왔습니다. 술에서 깬 노아는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창9:26-27)하고 말합니다.  시날은 바벨로니아이고(창10:10), 엘람은 바벨로니아 남서쪽의 고대 국가였습니다. 가나안은 13년째 그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배반하지만, 셈족의 연합군은 14년째 다시 징벌에 나서게 되고 가나안 국가들을 치고 재물과 사람들을 잡아갑니다. 노아의 예언에 성취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 속에서 그의 사람들을 위하여 일하십니다.

그런데 잡혀간 사람중에 아브람의 조카 롯이 섞여 있었기에 아브람은 그를 구하기 위하여 정복군들의 뒤를 쫓아갑니다. 그리고 조카 롯을 구하고 빼앗겼던 재물과 사람을 되찾아 돌아옵니다.  아브람의 군대는 가나안 연합군을 이긴 셈족의 연합군을 이길만큼 강한 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은 아브람이 하나님의 약속,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창12:7)을 기억했다면 그의 군대로 가나안땅을 손에 넣을 수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네 자손’에게 주신다고 했지 자기에게 주시겠다고 하지 않은 말씀을 분명히 알았기에, 하나님의 계획을 앞서가지 않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신실한 믿음을 보여 줍니다.

아브람이 조카 롯과 가나안 왕들이 빼앗긴 재물과 사람들을 구해 돌아왔을 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람을 축복합니다. 그의 축복은 아브람의 승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인정이었습니다.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창14:20)이라고 찬양합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14:20)며 멜기세덱이 인정하는 하나님을 확증하고 있습니다. 멜기세덱은 다른 사람들의 눈이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보고 인정할수 있었고, 아브람은 그를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인정하며, 십분의 일을 줌으로 그 하나님을 확증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인정은 히브리서 7장에서 왕이며 대제장이 되시는 예수님의 예표로써 멜기세덱이 기록되게 되고, 아브람은 왕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조상으로 기록되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멜기세덱과 대조되어 나오는 인물이 소돔왕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대신 자신의 사람과 재물을 되찾아온 아브람에게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존경을 표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것을 나누어 주기라도 하는듯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 (창14:21) 라고 합니다. 창세기 12:3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하나님의 사람 아브람을 존중하지 않는 소돔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의 불길한 징조가 서려있습니다. 대신, 소돔 왕의 제안을 거절한 아브람은 “큰 나라”가 되고 “큰 이름”을 얻기 위해 그가 인간 왕이나 그들의 선물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음을 강력하게 확증합니다(창12:2).

하나님이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으시고, 우리의 죄악을 오래 참으심을 인하여 사람들은 하나님을 인정하는데 실패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소돔왕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하는 것은 넘쳐나는 정보를 수집 분석 적용하는 일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 나를 전부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중에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할때 우리의 할 일은 우리의 삶중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감사 할 일 뿐이 없습니다. 멜기세덱과 아브람이 그랬듯이, 감사하는 삶은 여호와를 인정하는 삶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언3:5-6의 말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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