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의 고통이 말 하는 것은?

욥기 42:5-6,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January 29, 2022. SaturDevo

욥의 문제의 핵심은, “하나님, 잘 못 한것이 없는 나에게 ‘왜’ 이같은 고통을 당하게 하십니까?”입니다. 이 ‘왜’의 질문은 욥의 질문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도 많은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앞에 기도로 쏟아 내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특히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견디기 힘든 고난을 만날때, 그 해답을 찾고자 욥기를 펴보기도 합니다. 욥도 죽을 만큼 답답하고 고통스러워 그 고통이 왜 자기에게 왔을까 해답을 찾으려고 세 친구와 논쟁합니다. 그러나 욥과 욥기를 펴든 사람들이 발견한 것이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하나님은 욥의 요구에 단순하고 직설적인 대답으로 응답하기보다는, 그 해답을 해명하는 문학적 구성을 엮어 놓았습니다. 욥이 고난을 받는 이유를 설명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이 쉽게 이해할수 있게 대답을 하신다 해도 그 복잡성은 너무 어려워서 욥과 같은 지혜로운 사람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욥의 친구 엘리바스는 그의 첫 연설에서 고난의 원인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고(5:17), 나중에 엘리후가 더 자세히 설명합니다(33:14–30; 36:8–11, 15–17; 37:13). 고통이 사람을 올바른 길로 되돌리기 위해 고안되었다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며 결코 완전히 만족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욥기를 읽는 사람은 ‘나를 정금같이 나오게 하기 위해 나를 단련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할수도 있습니다 (욥23:10). 그러나 그것도 가능성이 있지만 완전한 해답이 되지는 않습니다.

욥의 친구들과의 욥의 주고 받는 논쟁, 엘리후로부터 받은 질책, 하나님의 말씀은 욥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궁극적으로 주요 문제이며 고통은 우리의 현재 삶에 영향을 주는 실재 일지라도  부차적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욥기의 문제를 하나의 문제라기보다 복잡한 일련의 문제로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무고한 자들의 고난, 의인들의 시험, 욥과 하나님의 관계에 관한 것으로 이 모든 것이 책 전체에서 함께 묶여 있습니다. 문제의 복잡성은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실용적입니다. 이 책이 욥과 그의 친구들의 가상적 논쟁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우리의 실제이라는 것입니다.

욥의 “세상”, 즉 그의 세계관은 율법에 대한 단순한 견해에 기초한 세상입니다. 하나님은 선한 사람에게 상을 주시고 죄인을 벌하십니다. 욥은 실재, 특히 하나님의 실재에 대한 그의 “결과론적” 이론에 너무 집착하여 그가 경험한 일과 결과의 실재 뒤에 있는 영원한 실재를 보는 것에 실패합니다.

욥의 세 친구는 “평안이 없을 때 화평하다, 화평하다”(렘 6:14)고 말합니다. 그들은 “불공정한” 현실에 직면하여 하나님의 공정성을 변호하려고 합니다. 욥이 (무의식적으로) 무슨 나쁜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내어, 하나님의 공정성에 대한 욥의 불평을 논박하고 욥의 고통을 “공정하게” 만들려고 시도 합니다. 욥이 처한 상황까지 의아해하며 욥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욥이 분개하여 친구들에게 하는 대답은 정당합니다. 그는 그들이 자신의 질문을 충분히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자신의 고통, 따라서 일반적으로 인간의 고통을 충분히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 대해 그들을 꾸짖습니다. 그는 비난하는 세 친구에게 말 폭탄을 던지며 비난, 방어 및 반격이라는 그들의 논쟁에서 그들을 이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복음적 관점에서 욥과 그의 친구들은 모두 잘못된 근거로 논쟁합니다. 욥은 하느님께 따집니다. 그의 친구들은 하나님을 변호합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행동과 결과의 관점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복음은 다른 형태의 하나님을 가르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 하셨느니라”(롬 5:8). 복음적 통찰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한 믿는 사람의 지위를 하나님 앞에 두는 것입니다. 욥은 책이 끝나기 전에 이것에 대해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욥의 처음 31장이 끝나는 논쟁적인 교착 상태에 개입한 엘리후로부터 먼저 그것을 듣습니다. 엘리후에 따르면, “죄인” 뿐만 아니라 “죄없는 사람”까지, 전 세계가 하나님의 실재 앞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욥 33:9-11).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시 14:3)입니다.

엘리후가 말한 후, 하나님께서 강림하십니다. “폭풍우 가운데서”(욥 38:1) 욥에게 대답하고 창조물에 나타난 그의 위대함의 증거로 하나님은 욥이 생각한 것 이상인 그의 실재의 본질을 구현하고 선언합니다.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의 위엄과 경이로움이 욥의 사유를 산산조각냅니다. 그는 새로운 겸손으로 대답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나를 업신여기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니”(42:6). 고통과 씨름하며 고뇌하던 욥은 하나님을 만났을때, 그의 온 정신(being)은 바른 하나님과 바른 관계로 전환합니다.

욥을 읽는 사람들은 이 책을 하나님이 공평과 보상에 대한 인간의 관념, 즉 공로의 법칙에 따라 운영하신다고 생각하는 하나님에 대한 관념에 대한 놀라운 교정책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성품은 악의와 멸시가 아니라 온유하고 자비로운 것으로 드러납니다. 우리는 책의 끝 부분에서 “욥이 늙고 날이 찼서”(42:17)와 그의 아들, 손자 4대에 걸쳐 본 것을 읽습니다.

욥기는 우리의 잘 잘못을 따지시며, 점수를 메기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부터 자유로와 지도록 도와 줍니다. 우리는 존재이시며 만유이시며 사랑이신 하나님을 보도록 인도되었습니다. 사랑이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듣고 본 심령 위에 진정한 위로(ESV note)가 있습니다 (욥42:6). 고통과 고난의 이유를 찾기 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실히 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고통과 고난의 이유를 찾는 것이 어려움속에서도 하나님을 신실히 믿을수 있는 전제 조건은 아닙니다. 고통과 고난에 진정한 위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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