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야고보서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February 19, 2022. SaturDevo

사람을 사람되게 하는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봅니다. 생물학적으로 본다면 직립보행이라든가 언어를 사용한다든가 하는 사실이 사람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는 특색이 될수 있습니다.  도구나 불을 만들고 창조하고 사용하는 사람을 통칭하는 베르그 송의 호모 파베르(Homo-Faber), 즉 베르그소니즘를 기억나게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데카르트는 사유하는 인간의 특색을 들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이라는 말은 아이디어의 발견을 언급하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생존의 본능으로써의 생각은 동물들도 어느 정도까지는 하며 행동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데카르트의 ‘생각’은 최소한 끝임없이 회의 하면서 자신의 존재의 진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게 됩니다.

17세기가 되어서야 세계적 석학들이 눈을 돌린 인간의 존재에 대한 진리를 수십 세기 전부터 성경은 언급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제부터 있었을 뿐이라 우리는 아는 것이 없으며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와 같으니라” (욥8:9). 성경은 사람을 동물과 비교하여 구별하려는 대신 하나님앞에 서서 자신들이 누구인지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의 존재을 안개, 그림자, 숨결이나 연기, 나그네등으로 비유하며 연약함과 덧 없음을 강조하는 한편, 그들을 이 세상 무엇보다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서술하고 있습니다(롬5:8, 마18:14).

이것은 하나님 앞에선 우리가 절대 잊어서는 안 될 두 가지 진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영원에 비하면 인생은 지극히 짧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땅은 임시 거처일 뿐입니다. 이 땅에 결코 오래 있지 않을 테니 너무 집착하지 마십시요. 이 땅위에서의 생명을 하나님이 보시는 그대로 볼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요. 다윗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시34:9). 이땅은 우리가 영원히 거할 집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지막 정착지가 아닙니다. 나그네 처럼 왔다가 할 일 끝나면 지나쳐 갈 곳입니다 (시119:19, 벧전 1:17).

내가 누구인지 잊을때 우리는 우리를 결코 만족 시키지 못할 영원하지 않은 것에 집착하게 됩니다. 하와이를 여행할 때의 일이 었습니다. 코너를 돌때 마다 너무나 아름다게 펼쳐지는 경치에 차를 세우고 내려 감탄을 연발하며 사진을 찍곤 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옆에서 친구인듯한 두 젊은이의 대화가 귀에 와서 꼿혔습니다.  너무나 멋진 풍광에 감탄을 연발하는 한 친구에게 다른 친구가 하는 얘기입니다. “이런 풍경도 너무 많이 보니까 이젠 왠 만큼 아름다운 풍경은 놀랍지도 않아.” 우리의 감각은 결코 만족하지 않습니다. 거머리가 다고 다고 하는것처럼, 멋진 풍경이 그렇고, 맛있는 음식이 그렇고, 편안한 촉각이 그렇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결코 우리를 만족시킬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주변의 것이 모두 일시적인 것이기에 그런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고 경계하십니다 (고전 7:31). 이 땅에서 행복이나 만족을 추구하는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닙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인생의 정체성은 영원에 있고, 우리의 본향은 천국입니다(빌3:20, 히11:16). 이 짧은 인생을 하나님은 왜 우리로 이땅에 있게 하셨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누구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존재와 존재의 이유를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은 말하길, 모든 인간은 하나님과 분리된 존재라고 합니다(롬 3:10, 23).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그리고 하나님은 새로운 피조물이 된 모든 믿는자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그가(하나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고후 5:18), 그리고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 (고후 5:20) 게 하시었습니다. 아직까지 하나님과 화해하지 못한 사람을 찾아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너무 집착하지 않도록 하나님은 우리가 인생에서 상당한 불만과 불만족, 즉 영원의 이 편에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갈망을 느끼게 하신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는 온전한 행복을 느끼지 못합니다.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아담의 후예라는 증거가 됩니다. 이땅은 우리의 마지막 정착지가 아닙니다. 우리는 훨씬 더 멋진 것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우리의 이땅에서의 삶은 사명을 받은 사신의 삶입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결코 이땅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완성됩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후 4: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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