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복음 5:29-30,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March 5, 2022. SaturDevo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독교에 관심을 가져보기 위하여 성경을 읽어 보려고 합니다. 그들이 제일 먼저 펴 드는 책이 보통 복음서이고 복음서 중에도 첫번째 책인 마태복음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책의 첫페이지을 읽어 내려갈때 걸리는 것이 끝없이 이어지는것 같은 예수님의 족보라고 합니다. 귀에 익지 않고 발음하기도 어려운 외국인의 이름이 ‘낳고 낳고’ 하는 특별하지도 아닌 내용이 끝없이 이어지는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고비를 넘고 다음으로 넘어가도 상황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어 내려 가다가 오늘 말씀, (마태복음 5:29-30)같은 말씀을 접하게 되면 기겁을 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인데, 예수님이 고연한 말씀을 하시지는 않을 것이고, 과연 기독교의 천국에 들어가기 위하여, 또는 죄를 짓지 않기 위하여 눈을 빼어 버리고, 손을 찍어내는 일을 해야만 하는가하며 하며 몸이 움추러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무시 무시한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요? 복음주의는 성경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이 실수로 하신 말씀이나, 겁 주려고 하신 허언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도 진리의 말씀이고 옳은 말씀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초기 기독교 철학자 오리겐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말씀 그대로 받아들여, 자신의 정욕을 주체할수 없자 자기 자신을 거세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따르기를 원하셨던 일이었을까 하는 것은 더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의사 전달에 있어 말은 유용한 도구입니다. 그리고 그 의사전달을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많은 의사소통 기술을 사용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과장법입니다. 문학이나 수사학 또는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우리는 은연중에 과장법을 많이 사용합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이라고 불리는 설교를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사용하신 과장법은 합리적인 의사소통 기술이었습니다. 과장법은 문자 그대로의 사실적 진실을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감정적 진실을 표현합니다. 과장법은 확신의 목소리입니다. 그것은 사건이나 내적 경험의 정신을 포착합니다. 그리고 논점을 극화시켜 듣는 사람의 주의를 집중 하도록 자극합니다.사람들은 무언가에 대해 강한 확신을 표현 할때, 또는 간절히 설득하려고 할 때 종종 과정법을 사용합니다.
신체 절단에 대한 그리스도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적용한다는 것은 거의 희극적 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욕망과 싸우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오른쪽 눈을 찔러 외눈박이가 된다고 해서 두 눈 가진 사람보다 음욕이 덜하다고 볼수는 없습니다. 오른손을 잘라, 한 팔가진 사람이 되어 보지만 한 손으로 사는 사람이 양손으로 사는 사람보다 욕망이 덜하거나, 죄를 덜 진다고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왼쪽 눈을 도려낼 수 있지만 성적 환상은 여전히 마음 속에서 생생할수 있습니다. 장님이어도 또는 양팔과 다리를 잘라버려도 몸통도 욕정에서 자유롭지 못 할 것입니다.
문제는 신체 부위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간음이 모든 죄와 마찬가지로 남자와 여자가 지옥에 갈 만큼 충분히 심각한 것임을 자극적인 과장법을 사용하시어 강조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파멸과 죄악으로 이끄는 것은 무엇이든 과감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너무 늦기 전에 그 해결책이,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단호해야 한다는 예수님의 요청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안닌것을 알고, 틀린것을 알면서도 그 일을 계속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경계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첫번째 설교라고 할수 있는 이 산상수훈은 사실 과장법도 사용하고 있고 사람의 한계를 넘는 것도 요구하고 있습니다. 5장 마지막 절, 48절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땅위에 하나님처럼 온전할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이런즉, ‘누가 천국에 갈수 있겠습니까?’하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마19:26).
예수님은 없는 길을 가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가르치시는 길이 너무 어렵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요. 눈을 파내고 팔을 절단하는 일을 할수 없다고 예수님께서 가르치는 교훈까지 버리지는 마십시요.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라고 하십니다. 길은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우리의 신체 부위를 도려내고, 잘라내어도 갈수 없는 천국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갈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