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러운 세상속에 경건한 사람

시편 12:5,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March 19, 2022. SaturDevo

요즘 세상을 바라보며 오늘날의 기독교는 기독교 역사의 어느시점에 비교될 수 있을것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디지털 세계는 인쇄술 이후 가장 큰 혁신이며 이 사회에 대해 살아가고 생각하는 방식을 많이 바꿔 놓았습니다. 사람들은 만남과 교제의 커뮤니티가 아닌 맞춤형 사이버 커뮤니티를 형성합니다. 현 세대는 여러 가지 이유로 기독교의 제도적 형태를 경계합니다. 제도적 교회의 추문들로 인해 제도에 대한 더 큰 불신이 팽배합니다. 영성은 있지만 종교 기관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들입니다. 모두가 인정하는 절대 가치가 있던 모던니즘에서 다원주의로 깊숙이 빠져들고 있는 포스트모던니즘의 특색들입니다.

이러한 시각이 젊은 사람들이 공동체와 더 나아가 종교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입니다. 그들은 종교를 선택적인 개인에 일정의 문제로 간주합니다. 하나님이 중심이 아니고 개인이 각각의 중심인 사회입니다. 하나님은 개인의 삶에 한 요소로 선택할지 안할지, 어떤 방식으로 어떤 위치에 선택할지의 문제로 전락합니다. 이런 사회에서 경건이나 충실이란 말은 조롱의 의미를 함유합니다. 거짓은 편리를, 두 마음은 지혜있는 전략을 의미합니다. 가난이나 한계인은 무능으로 간주됩니다. 이런 사회는 공평과 정의를 말하지만, 구조적 불의는 법의 테두리 밖에 있습니다.

다윗이 살던 시대에도 사회 일각에서는 이와 비슷한 일들이 일어난 듯 합니다(시편 12편). 다윗이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의 신실한 선택된 종으로,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능력있는 왕이되어 이스라엘을 열방중에 최고의 나라로 만들지만, 적이 꽤나 많았던 다윗은 자신의 아들들의 부패도 어찌하지 못했고, 사회의 구석 구석에는 불충실, 거짓말, 기만이 난무하고 있었습니다(시12:2-4). 구조적 부패와 위선이 표준이 되는 사회가 됩니다.타락해 가는 사회는 경건한 사람이 줄어들고, 충실한 사람들이 없어지며(1절) 가난과 불의는 힘 없는 백성들의 몫이 됩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도 잘 사는것 처럼 보이는 또 다른 사회를 창조합니다. 명백한 판단이 없기 때문에 뻔뻔스러운 사기꾼들은 자신이 운명의 주인이라고 믿습니다(벧후 3:4).  미가 선지자는 이런 타락의 사회를 그림처럼 생생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경건한 자가 세상에서 끊어졌고 정직한 자가 사람들 가운데 없도다…그들의 가장 선한 자라도 가시 같고 가장 정직한 자라도 찔레 울타리보다 더하도다…너희는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며 네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네 입의 문을 지킬지어다”(미7:1-6).

다윗의 강점중에 하나는 잘못되었음을 인지하는 순간 바로 하나님 앞에 엎드릴 줄 아는 기도에 대한 순발력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어쩔수 없는 상황을 바라보며, 하나님앞에 기도합니다. “도우소서” (시12:1). 무엇을 도와달라는 목적어도 없이 단지 외마디의 외침으로 시작합니다. 히브리어로는 “호세아”이고, ESV는 “save”로 직역했습니다. 이 단어는 나중에 “예수”가 됩니다 (마1:21).

다윗은 타락한 사회를 바로 잡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타락한 사회, 타락한 삶을 바로 세울수 있는 사람은 의로운 사람이어야 하고( 시12:5, 벧전 3:18), 진리를 말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 시 12:6, 요 5:24), 주권적인 재판관이고, (시 12:3, 5, 요8:26), 영원한 보호자이어야 합니다 (시 12:7,  요 10:28).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일 수 뿐이 없습니다. 비록 악인들이 이 타락한 세상에서 잠시 동안 높임을 받기는 하지만, (누가복음 16:13-15) 타락한 기득권에 희생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그들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고, 심판하시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구조적인 악에 압도당하고 진리를 옹호하는 소수의 존재로 낙담할 때, 이 시편 12편은 그들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인도하며, 공의에 대한 권위있는 약속으로 희망을 줍니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눅12:32), 누가의 증언입니다. 사람의 눈에 의인과 경건한 이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믿는 사람들이 고난없이 살 것이라고 약속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나그들을 악한 세대로부터 보호하시고 구원하시어 영원까지 보존하실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시12:5-7).

시편 12편은 고난의 날에 경건한 사람들이 해야할 일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는 기도의 위로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있는 동안 우리는 악인들 가운데 있을 수 뿐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사악함에서 구원받기 위해 기도해야 하고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다윗이 그의 어려움을 기도를 통해 위로 받았듯이 믿음의 사람은 기도를 통하여 위로 받을 수 있습니다.

두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이 행동으로 성취하실 것만 말씀으로 주신다고 했습니다. 흙 도가니에 일곱번 단련한 은같이 순수한 진리의 말씀은 반듯이 성취될 하나님의 약속이고 믿음의 사람의 능력이 됩니다.

세번째는 성도의 친교를 통하여 얻는 새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안전한 곳에 두시겠다 하십니다. 루터는 하나님께 진실한 사람만이 사람에게도 진실하다라고 말합니다. 두려움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수 있는 용기로 믿음의 사람은 서로의 삶을 격려하며 새로운 힘을 얻습니다.

경건한 것은 힘들게 심겨지지만, 가라지는 스스로 자란다 (16세기 독일 신학자 오시안더)고 합니다. 오늘날의 사회 병폐는 풍요와 그 풍요가 자신들의 능력인 줄 아는 교만속에서 자라는 독초같은 현상입니다. 미국이 그렇고 한국이 그렇습니다. 시편 12편은 이런 사회를 사는 경건한 믿는자에게 주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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