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가복음 11:7-10,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하더라.”
April 9, 2022. SaturDevo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마지막 주간, 고난주간이 시작하는 주일을 우리는 종려주일이라고 합니다. 이날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올려놓은 나귀 새끼를 타시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드는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왕의 도성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십니다. 종려나무(Palm tree) 가지를 흔드는 것은 당시 이스라엘에서 적에 대한 승리의 개념을 상징적으로 전달하는 행위였고, 겉옷을 벗어 발 밑에 까는 행위는 왕으로 인정하는 겸손의 징표였습니다(왕하 9:13).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호한 사건을 기념하며 이름한 종려주일이란 말은승리와 정복과 환희의 이미지를 줍니다. 그러나 그 주 첫날의 환호의 함성는 점차 적의로 채워지며 종국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무지한 백성의 외치는 아우성으로 끝이납니다. 종려주일의 밝은 희망의 이미지로 시작한 한주는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암울한 절망으로 고난주간의 막을 내리는 듯 합니다. 잘못된 이해는 잘못된 기대를 가져오고 그로 인하여 잘못된 결과를 초래하는 실수를 합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대한 몰이해로 일어난 사건의 전말입니다.
예수님의 승리의 예루살렘 입성 사건은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한 주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 특별한 사건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면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며 만왕의 왕이신 구주의 궁극적인 사명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영원한 왕의 입성이고(슥9:9, 창49:10, 시118:26) 두째는 유월절 양(출12:1-14)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유월절에 맞추어 오시게 됩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삼대절기중 하나이며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고있던 유대인들은 이 절기에 맞추어 예루살렘에 모여듭니다. 모든 유대인들이 고대하고 있는 사상은 메시야 사상입니다. 이것은 성경에 근거한 믿음이었지만 다분히 유대화된 믿음이었습니다. 다윗 계통의 메시야(구원자)가 나타날것인데 그가 모든 이스라엘의 대적을 물리치고 영원히 공의로 이스라엘을 다스릴 것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신8:15, 사9, 슥14). 로마의 압제하에 있던 이스라엘은 예수님이 갈릴리 지역에서 3년동안 행하셨던 모든 일을 소문으로 들었을 것이고, 그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이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신다는 이야기는 산불 번지듯 삽시간에 퍼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메시야를 학수고대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그가 메시야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이 점에 있어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과 백성들의 생각과 관점에는 어떤 갈등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이 역사적 예루살렘 입성 사건이 복음서에 기록된 대로 펼쳐지게 됩니다 (마21:1-11, 막 11:1-11, 눅 19:28-40, 요 12:12-19).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막11:6-10).
그러나 예수님과 백성과 제자들의 메시야에 대한 관점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야는 죄와 악에서의 구원이고 천국의 영원한 왕 이였지만 제자들과 백성들의 메시야는 정치적 메시야이고 기껏해야 이스라엘의 왕 이였습니다. 예수님의 대적은 죄와 불의 이었지만, 백성과 제자들의 대적은 로마였습니다. 한 주가 지나가며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그들이 바라던 정복하는 메시야로 오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그들이 원하는 정치적 구원을 가져다 주지 않으실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그분이 속죄와 죽음과 부활을 통해 가져올 참된 구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불과 닷새 후에, 그의 예루살렘 입성에 대해 환호을 외쳤던 바로 그 백성 중 일부가 이제 ‘예수를 십자가에 달라’고 외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하고 메시야에 걸었던 이스라엘의 기대는 이제 적의로 바뀝니다. 예수님의 제자중 하나는 배반까지 생각하게 됩니다.
또 하나의 역사적 배경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예수님입니다(출12:1-14).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의 중요성을 더 잘 이해하려면 유월절과의 상관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던 날은 닛산월 10일 (히브리력, 1월 10일) 입니다. 바벨론 포로 이전에는 아빕월로 불렸으나 이후에는 닛산월로 불립니다. 이날에 출애굽기 12장에 따르면 여호와께서는 정월 10일에 흠 없는 일년된 어린 양을 택하라고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십니다.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이 달 열나흗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출 12:5-6). 이렇게 선택된 양은 다음 4일 동안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해 집으로 데려옵니다. 그리고 열다섯째 날이 시작되기 전날 밤에 (열나흗날 해 질 때에) 그들은 어린 양을 잡고 문설주에 피를 바르고 유월절 음식를 함께 나누어 먹습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은 멸망시키는 천사가 애굽땅에 모든 장자를 죽일때, 그들을 지나쳐 그 집의 장자를 살려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역사적 배경에서 종려주일의 사건을 보면, 유대인들이 유월절 어린양을 선택하던 바로 그 날에 하나님의 참 어린양이신 예수님이(요1:29) 예루살렘에 입성하셨고 백성들에게 상징적으로 선택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어린 양이 백성의 집에 들여와서 나흘 동안 머무는 것과 같이 예수님도 아버지 집 성전에 오셔서 죽으시기 전 나흘 동안 백성들과 제자들과 함께 있으며 가르치셨다는 것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종려주일의 의미입니다.
우리는 어떤 메시야를 기대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모든 역경과 시련에서 즉시 우리를 구원시켜 주실 분이 예수님이라고 믿으십니까? 아니면,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때와 시기를 신뢰할 만큼 겸손합니까?
우리 각자는 영적인 속박 속에 있는 우리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의 피로 풀려야 하는 우리의 죄의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이것이 우리 각자의 개인적인 출애굽 이야기입니다. 유대인들이 어린양을 구별해 들여 놓고 나흘을 같이 지내다가 유월절 전날밤에 양을 죽여 그 피를 문설주에 발라 자신들의 생명을 구했던 것처럼, 이번 종려주일이 우리 각자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선택하고 그분을 우리의 삶에 들이는 기회가 되길 소원합니다. 이스라엘인들이 호산나(Lord, Save me)를 외치며 옷을 벗듯(겸손) 우리의 모든 것을 그 앞에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기로 선택하고 그분의 참모습을 보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그분이 유월절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흘리신 그 피로, 사망과 죄를 심판하는 하나님으로 부터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어린양의 승리의 입성과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