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하지 말고

빌립보서 4:5-7,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April 30, 2022. SaturDevo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마태복음 6:25절에 예수님의 말씀을 풀어서 다른말로 설명한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6장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욕구와 갈망과 미래를 향한 걱정 근심의 실체를 보이시며 결론적으로 ‘그러므로(therefore)’하시며 진정으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것은 그런것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라는 것을 가르치고 계신 말씀입니다. 시셋말로 한다면, 먹고 입고 사는일 가지고 염려하지 말라는 얘깁니다. 그런것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줄 하나님이 다 아시고 계시다고 합니다. 중요한것은 우리가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의 삶을 조화시켜 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들을때,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정말 기도와 간구로 우리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모든 염려와 걱정을 없이 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기도와 간구로 모든 염려를 이길수 있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삶은 아울러질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할까?

첫번째 질문은 두번째 질문에 전제가 될수 있을것 입니다. 내일에 대한 염려와 걱정이 없어진다면,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뜻안에 녹아드는 일은 어렵지 않을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6절은 ‘염려하지 말고,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라’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염려를 자연반사/반응으로 생각합니다. 어떤 사건이나 사고가 생겼을때, 우리가 염려할것인가 말것인가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적으로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것은 이 영적 자연반사는 옳은 반응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멀어진 사람의 죄성으로 인하여 사람에게 잘못 길들여진 옳지 않은 영적 습성입니다.

자연 반사는 손에 불이 닿았을때 우리가 배우지 않았어도 손을 빼는것과 같습니다. 한편 조건반사는 배우는 것입니다. 어떤 사건이나 사고가 생겼을때 어떻게 반응할것인가를 배우는 것입니다. 그랙 로리 목사님은 이것을 자동차 운전하는것을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운전을 처음 배울때, 앞에 차가 있으면 브래이크를 밟아야 하는 것을 배웁니다. 스탑싸인 앞에 섰을때 좌우를 살피고 사람이나 다른 차가 없으면 가는 것을 배웁니다. 차를 세우기 위해서는 발로 브레이크를 밟고, 섰다가 가기 위해서는 발을 오른쪽에 있는 악셀레이터를 밟아야 하는것을 배웁니다. 차를 처음 운전하는 사람은 이 모든 동작들을 하나 하나 배운대로 기억해 가며 염려스럽게 한동작 한동작을 연습합니다. 조건 반사입니다. 그러나 운전이 익숙해 지면, 그런 하나 하나의 동작에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운전을 합니다. 운전이 자연반사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이것을 기도에 적용해 봅니다. 걱정스러운 일이 생길때 바로 하나님께로 향합니다. 조건 반사를 발달시키듯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습관을 들여갑니다. 이 조건반사의 행동이 자연반사의 행동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건, 사고, 근심, 걱정이 일어나는 순간이 자연스럽게 기도로 이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습성이 된 염려라는 영적 반사를 조건 반사를 발달시킴으로 바른 자연  반사로 바꾸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기도는 염려의 해독제입니다. 주님이 우리와 가까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근심할 필요가 없고, 그가 우리에게 가까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또한 기도할 수 있습니다(시 34:15). 이것이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바울의 해석입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고 합니다. 모든 근심 염려에 대한 자연 반응이 기도로 바뀔때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언어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삶이 된다는 것이 바울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는 많은 사람이 생각하듯, 하늘나라의 언어도 아니고, 철학자나 군자의 언어도 아닙니다. 오늘날의 언어로 바꾼다면, ‘영생을 소망하며 하나님의 말씀안에 사는 삶’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삶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절대 의지하는 삶입니다.

이런 삶을 바울은 로마서 8:31-39절에서 강변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아울어진 삶을 사는것은 가능합니다. 염려하는 잘못된 습성을 고치고, 기도의 천성을 의식적으로 발달시키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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