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읽는 기쁨

요한복음 2:3-4.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June 4, 2022. SaturDevo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사람도 더 잘 알기 위하여 읽고,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기 위해서 읽습니다. 그러나 읽는다고 다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요한 복음2장1- 12절 가나의 혼인 잔치 이야기를 읽다가 그 상황과 맥이 안 맞는 대화가 오고 가는 부분을 만납니다. 첫째는 포도주가 떨어졌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는 왜 그 사실을 예수님에게 말했을까? 두번째는 왜 예수님은 어머니를 “여자여”라고 호칭했을까? 그리고 세번째는 예수님은 왜 뜽금없이 “때가 이르지  않았다”는 말을 할까? 마치 두 사람이 무슨 암호를 주고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럴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십니까? 전에 들은 설교를 기억하여 익히 아는그런 프레임 안에서만 이해하려고 하는 대신, 줌 아웃 하여 보시길 권합니다. 한두 발짝 뒤로 물러서서 보시고, 전체를 보는 것입니다. 복음서는 기본적으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우리에게 알려 주려고 쓰인 책입니다. 구약은 메시야(구세주)가 우리에게 오실것을 예언하고 있고, 신약은 그 메시야가 예수님이시며, 세상에 오신 메시야 예수님이 우리 중에서 무슨일을 하셨고, 무슨 말씀을 하셨으며, 무슨 약속을 하셨는지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쫙 펼쳐놓고 어떤 구절이나 이야기를 살표보면 전체와 어떻게 조화되는지 보일 수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2장1-12장의 이야기는 11절에 언급된 대로 첫번째 표적입니다. 예수님께서 표적 또는 기적을 행하시고 보이신 주된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가 누구신지를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첫째 왜 예수님의 어머니는 포도주가 떨어진 사실을 예수님에게 말하고 있습니까? 이 이야기에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 메시아이신 것을 지금까지는 세례 요한만 증거했고, 그 만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나신 분이라는 것을 (마1:18, ) 예수님의 어머니는 알고 있고, 목자들의 말과, 정결 예식에서 시몬과 안나의 기도와 예수님이 열두 살 때 성전에서 랍비들과 토론하던 일들을(눅2장) 마음에 품고 있던 어머니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있습니다. 혼인잔치에 앉은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제자들을 뽑으며 사역을 시작하셨음을 압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어머니는 예수님이 이 잔치집의 문제점을 해결해 주실수 있고, 그녀의 부탁을 신실하신 하나님의 아들은 거절치 않을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저자 요한은 독자가 혼인잔치에 앉은 예수님을 읽으며, 계시록 19장의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주인공 예수님을 읽기를 바라고 있고, 혼인잔치의 주인공은 예수님이란 사실을 기억하고,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부족하다는 것은 신랑에게 수치란 것과, 포도주가 부족하다는 것의 의미와, 왜 예수님이 좋은 포도주를 정결의식에 쓰는 돌항아리에 넘치게 하셨는지를 이해할수 있고, 포도주는 우리를 정결케하는 예수님의 피인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린양 예수님의 피는 우리를 단번에 모든죄에서 정결케 할 구원의 피가 됩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말하는 형식을 빌어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말하고 있는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두번째, 어머니를 “여자여”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것을, 이것이 존칭이냐, 하대냐의 문제로만 보지 말아야 합니다. “여자여(γυναι/구나이)<헬라어>”하는 말은 창세기 3:15의 여자와 요한복음 19:26의 ‘여자’와 같은 말로써  당시 유대인들에게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5) 을 기억나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이렇게 “여자여”라는 호칭을 창세기의 말씀과 연결시켜 보실 수 있다면 예수님께서 자신이 사탄의 머리를 밟을 그 여자의 후손(창3:15)임을 그의 사역 초기에 선포하시며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하고 계신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때가 이르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요한 복음에서 “내 때(my hour)”는 ‘십자가에 달리는 때’, 즉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그의 대속적 구속이 이루어지는 때 (요7:30, 8:20, 12:23, 27, 13:1, 17:1)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에 대하여 당시 유일하게 자신의 실체를 알고 있는 어머니에게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이 시점에서, 오실 메시야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로 인해,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공개적으로 자신을 계시하지 않기로 선택하십니다. 그는 수많은 메시아 “표적”을 행하셨지만 이 기적조차도 조용히 이루어집니다. 다른 복음서에 비해 요한은 예수님의 공적 사역을 덜 강조하고 특정 개인에 대한 그의 사적인 사역을 더 강조합니다. 이렇게 요한 복음을 읽어본 사람들에게 그 말씀은 암호가 아니라,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렇게 텍스트로 표현되지 않은 진리를 꺼내보는 것이 성경을 읽는 또 하나의 기쁨이라고 믿어집니다. 초나라의 화씨라는 사람이 초산에서 귀한 옥석을 발견하여 여왕에게 받쳤습니다. 그 옥석을 받아본 여왕은 돌을 보냈다며 화를 내고 그의 왼발을 잘라버립니다. 여왕이 죽고 무왕이 즉위하자 화씨는 다시 그 옥석을 왕에게 받칩니다. 무왕도 그 옥석을 알아보지 못하고 돌이라며 화를 내고 그의 오른발을 잘라 버립니다. 무왕이 죽고 문왕이 즉위하자 화씨는 그 옥석을 안고 초산에서 사흘 밤낮을 곡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문왕이 그 까닭을 묻습니다. “두 발을 잘리는 형을 받은 자가 너 뿐만이 아니거늘 너는 어찌 그렇게 슬피 우는 것이냐?”  “저는 발이 잘린것을 슬퍼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옥을 돌이라 하고 곧은 선비를 거짓말쟁이라 부르니 이것을 슬퍼합입니다”. 문왕은 그 옥석을 다듬게 하여 천하에 보배를 얻게 되는데 이것을 일컬어 화씨지벽이라고 합니다. 돌같이 생긴 옥석을 돌이라 하지 말고 다듬어야 보석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도 갈고 다듬어 보십시요. 화씨의 보배보다 더한 귀한 진리를 얻을 줄 확신합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