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에 나타난 구원

요한복음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June 11, 2022. SaturDevo

요한복음에는 “회개”라는 단어가 없는것을 알고 계십니까?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서 ‘회개’라는 단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다른 복음서들과 다르게 그가 복음서를 쓴 목적을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 20:31) 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서 “생명”은 “영원한 삶”을 언급하고 있는데, 요한은 영생을 언급하면서 회개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머리속에 떠오르는 질문하나, 회개 없이도 영생, 즉 천국에 갈수 있습니까?

영생은 다른 복음서들의 언어로는 천국의 삶, 또는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과 같은 의미입니다. 세례요한의 외침을 기억나게 하며, 예수님의 사역은 이 천국 또는 하나님 나라의 시작과 함께  회개를 외치고 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마4:7),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막1:15),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눅5:32). 이들 복음서들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때 천국에 가는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언어는 영생에 대하여 그런 아무 조건이 붙지 않습니다. 단지 예수그리스도가 아버지가 보내신 아들인 것을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공관복음서와 요한 복음서는 다른 말을 하고 있는것 일까요?

먼저 회개의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할것입니다. 문자적으로 회개는 마음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회개라는 말은 여러 경우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보통의 경우 회개는 생각 뿐만 아니라 도덕적 태도를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회개’가 생각이나 마음의 내적인 변화로서의 회개는행동의 외적인 변화와 구별됩니다. 비록 회개가 내적 외적 변화를 예상하지만(마 3:8, 눅 3:8; 행 26:20), 또한 죄가 항상 회개의 대상은 아닙니다(행 17:30; 20:21; 히 6:1). 상황이 내적 외적 변화인지, 또는 단지 내적변화인지를 결정합니다. 또한 ‘회개’가 오직 믿음으로만 얻게 되는 구원의 두 번째 조건도 아닙니다. 회개가 영생을 주지는 않지만 제자의 길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데 도움이 됩니다. 회개는 우리가 우리 삶이 죄의 권세에서 자유를 얻는 데 도움이 됩니다. 공관복음서들이 회개를 중요하게 말하고 있지만, 회개가 구원의 필수조건이나 선행 조건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이것을 기억하면 회개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성경의 여러 구절을 명확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회개는 하나님과의 삶에 대하여 바른 생각과 태도를 갖게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가게하는 매우 중요한 단계이지만 회개가 하나님께로부터 영생을 받기 위한 조건은 아닙니다. 고맙게도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회개에 해당하는 헬라어(메타노이아)가 문자적으로 “마음을 바꾸다”를 의미한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회개는 단순히 사람의 영생의 근원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과정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예수님 이전에는 자신의 공로와 선행으로 영생을 얻거나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죄인임을 깨닫고 나면, 우리는 어떻게 영생을 얻는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게 되고(회개),  영생을 얻기 위하여 예수를 믿게 됩니다. 이런 경우 동전의 양면처럼 받아들여지고 ‘회개’가 믿음의 개념을 포함합니다 (마11:20, 눅5:32).

이처럼 요한 복음의 “믿음”은 회개를 함축하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회개가 영생을 얻는데 선행조건도, 반드시 있어야 하는 과정도 아닙니다.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회개라는 단어를 수십 번 사용했기 때문에 회개라는 단어를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요한은 명시적으로 복음주의적인 복음서에서 그것을 제외시켰을까요? 마음의 변화로서의 회개는 믿음으로 묘사될 수 있지만, 회개가 죄에서 돌이키는 것이라는 생각이 명시적으로 믿음 이라는 말과 항상 동의어로 인정 될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회개가 구원의 조건이 되지도 않습니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신 구주로 믿는 것만으로도 영원한 구원에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생은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엡2:8). 믿음과 함께 사용되는 수식어는 없습니다. 요한복음에는 믿음에 회개, 헌신, 순종과 같은 다른 조건이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직 한 종류의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 죄의 구원자이심을 단순히 믿을 때 구원을 받습니다 (요9:38). 구원은 절대적으로 무료이며 그것을 얻기 위한 어떤 조건도 없습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