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복음8:11.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June 18, 2022. SaturDevo
요한복음 7:53-811은 자세히 보시면 괄호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보통 ‘초기의 오래된 사본에는 7:53–8:11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라는 설명이 붙어있습니다. 그리나 후대의 어떤 다른 사본들은 본문의 약간의 변형과 함께 요7:52 또는 7:36 이후 또는 21:25 이후 또는 누가복음 21:38 이후에 이 구절을 추가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 말은 요7:53-8:11은 요한이 쓴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이 실제 예수님이 행하신 일 이지만(요 20:30), 요한이 빠트린 말씀 일 가능성이 있고, 또한 영감있는 말씀이며 또 성경의 다른 말씀들과 배치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경이 가르치는 다른 진리들과 일치하며, 또 확증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성경으로 읽을 가치가 있으며 배워야 한다는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7:53-8:11의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의 이야기는 요한복음 1:17의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는 말씀을 잘 설명해 주는 이야기로 받아들여 집니다. 그리고 또한 이 말씀은 마태복음 7:1-2,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는 말씀과 놀랍게 부합하고 있음을 볼수 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예수님에게 끌어온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들은 모세의 법을 알고 그런 여자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줄 잘 알고 있지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예수님에게 사형선고를 시키고 싶어서 였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요8:5). 그들은 아무리 사랑을 얘기하고 죄인을 용서하고 은혜를 주장하는 예수님이라도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옹호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죄인을 살리러 오신 예수님에게 죄인을 ‘돌로 치라’는 사형 선고를 내리게 하여 예수님의 주장이 앞뒤가 안 맞는다는 것을 증명하고 또 로마 총독만이 내릴수 있는 사형선고를 내려서 로마법을 어기게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설사 그녀를 용서해 준다면 그것은 모세법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잡기 위하여 구덩이를 판 것입니다.
전국시대 상앙이라는 사람은 진나라에서 법제도를 개혁한 사람입니다. 그의 법제도는 예외가 없었습니다. 법을 어긴사람은 그가 태자 일지라도 법을 받게 했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법제를 시행한 덕분에 진나라의 모든 백성은 철저하게 법을 지키게 됩니다. 그러나 그를 믿고 밀어주던 효공이 죽고 아들이 왕이 되는데 그가 전에 상앙의 법에 따라 벌을 받은 진혜왕입니다. 진혜왕은 상앙을 미워하여 그를 체포할 것을 명합니다. 상앙은 도망을 치고 밤이 되어 여관에 들어 숙박하길 원하지만, 그가 상앙인줄 알지 못하는 여관주인은 말하길, 상앙의 법에 의하면 여행권이 없는 사람은 숙박시킬수 없음을 얘기합니다. 즉 자기가 만든 법에 자기가 걸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그는 결국 잡혀 거열형(사지가 찢겨 죽는 형벌)에 처해지게 됩니다.
이와 같은 형국이 요한 복음 7:53-8:11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자신이 하신 말씀에 자신이 걸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머뭇거리는 듯하자 그들은 예수님을 독촉합니다.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요8:6-7). 그러자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모세의 율법을 들먹거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을 먼저그들에게 적용시키십니다. 모세의 율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마7:2-3). 예수님의 판결입니다. 예수님을 구덩이에 빠뜨리려던 그들은 먼저 그들이 죄인의 구덩이에 빠집니다. 자기가 던진 부메랑이 자기에게 돌아갑니다.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돌로 치려던 사람들이 다 떠나고 난 후, 예수님은 그 여자에게 묻습니다.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여자가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님의 선고입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예수님은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율법을 적용하십니다. 그러나 용서가 필요한 상한 죄인에게는 은혜와 긍휼을 베프십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간음죄는 아닐지라도 죄를 짓다가 잡힌 사람들입니다. 로마서 3:10 은 “의인은 없나나 하나도 없다”고단언합니다.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는”(히4:12) 하나님앞에서 의로움을 주장할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율법과 세상은 우리의 죄를 정죄할 지라도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은혜를 주고 계십니다. ‘네가 가서 더이상 죄를 범하지 않고 살면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라고 하는 대신,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으니, 죄를 범하지 말라’하십니다. 예수님의 은혜와 용서가 그녀의 앞으로의 행동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은혜와 용서는 새 삶을 위한 동기가 됩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이 말씀은 또한 오늘 우리의 새로운 삶을 향한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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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연결되지 않는 지역을 여행합니다. Juneau Alaska 인데 다행히 한국식당, Korea Garden 을 발견하고 점심을 먹으러 들어왔는데 Wifi가 연결되어 늦게 글을 공유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