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 복음9:39. “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July 09, 2022. SaturDevo
오늘날엔 ‘모든 사람이 죄인이다’(롬3:10)라는 말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심판’라든가 ‘하나님의 진노’라는 말에는 무감각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혹시 점점 더 죄에 뻔뻔해져 가는 세상이 아닐까하여 슬퍼집니다.
로마서 1장에서 사도 바울은 불의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매우 완곡하면서도 리얼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만든 세상만물을 통하여 존재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를 영화롭게 하기는 커녕 사람들은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 (롬1:21)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온갖 상상할 수 없는 죄를 짓는데 그 죄는 점점 더 깊어지고 더 넓어져 갑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 (롬1:26)고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롬1:28)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이 불의한 세상에 내리는 진로의 심판이란 것입니다. 그들은 죄를 지으면서도 죄에 무감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서서히 덥혀지는 물 속에서 죽어가는 개구리입니다.
바울 당시, 하나님을 믿으며, 율법을 가졌다고 하는 유대인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로마서 1장에서 율법없는 세상 사람들의 죄을 언급한 바울은 2장에서는 율법있는 사람들의 이면을 들어냅니다. 율법을 가진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행하는 대신, 그 율법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데 사용합니다. 즉 그들도 역시 율법을 행하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율법에 판단을 받습니다. 사도바울은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롬2:12)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심판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 (롬2:16)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죄를 지으면서도 자신들이 죄인 인줄 모르는 도덕적 맹인이었습니다.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이 날때 부터 장님되었던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준 후, 얼마후에 다시 그를 만나게 되었을때, 예수님은 그에게 말합니다.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요9:39). 그때 그 말을 들은 바리새인들이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맹인인가?’ 예수님은 롬마서 2장에서 말하고 있는 율법을 가졌다고 하는 눈뜬 장님을 이렇게 심판합니다.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요9:41).
율법 가진 죄인 만큼 다가가기 어려운 죄인은 없습니다. 그들이 요즘의 법조인이라는 사람들이고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이 실수가 아니라면, 그들은 악마 같은 죄인들이고, 실수라면, 그들의 실수는 그들은 법을 지키는 사람들이기에 하나님의 심판에 대상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위선자 이거나, 그들 자신에 대하여 비현실적인 생각을 가진 정신이상자 입니다. 그들이 옳은 것은 한가지 “율법이 옳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생각이 그들을 장님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율법을 가진 사람들도 율법을 갖지 못한 사람보다 더 나을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진로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까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죄는 우리를 하나님의 적으로 만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적으로 돌리는 것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적으로 돌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 인줄 알면서 죄를 짓는 자체가 그것입니다. 이 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찬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크리스찬의 역사가 거듭되면서 바리새인화 되어가는 크리스찬이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은 자신들이 장님인줄 모르는 장님이었다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모든 사람이 죄인 인줄은 압니다. 논리적으로 그들이 죄인인줄은 알지만, 그들의 감정과 마음으로는 자신이 죄인인 줄 모릅니다. 그래서 그들은 죄를 지으면서도 무감각하고 예수님을 찾을 생각을 안합니다. 그들은 볼 수 있다고 주장 하지만 볼 수 있기에 죄가 그대로 있는 도덕적 맹인들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도 느끼지 못하고 죄 중에서 죽어가는 슬픈 영혼입니다.
자신이 죄인 인줄 아는 사람은 용서를 구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자신이 죄인 인줄 모르는 사람은 판단하기 위하여 사람을 바라봅니다. 바리새인과 세리가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갑니다. 바리새인은 세리를 정죄하고, 세리는 자신의 죄를 회개합니다. 그리고 의롭다 하심을 받고 내려온 사람은 세리였습니다 (눅18:9-14).
크리스찬이 세상 사람과 틀린것은 회개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 입니다. C. S. Lewis는 말합니다. “세상에는 결국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당신의 뜻이 이루어 지이다’라고 하나님께 말하는 사람과, 다른 하나는 ‘당신의 뜻이 이루어 지이다’라고 하나님이 말하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