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일서4:9-10,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August 27, 2022. SaturDevo
젊은 부부을 처음 만나면 종종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둘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냐? 누가 먼저 사랑했느냐?는 아이스브레킹(Ice breaking)질문을 하곤 합니다. 그럴때 어떤 사람들의 대답은 ‘저 사람이 나를 먼저 좋아했어요. 그래서 노총각/노처녀를 내가 구제해 주었습니다.’라고 과장을 하며 같이 웃곤합니다. 그런데 성경에도 그와 비슷한 내용의 하나님과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요한의 입을 통해 고백하는 하나님의 대답은 의외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내가 먼저 죄인인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요일 4:19)’.
요한의 편지를 읽다보면, 왜 요한을 사랑의 사도라고 부르는지 알게 됩니다. 그는 사랑의 눈으로 예수님을 이해하고, 사랑의 눈으로 성경을 이해하고, 복음을 설명한 사람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어떻게 사랑하나(How to love)를 가르치고 있다면, 사랑의 사도 요한은 그의 편지에서 사랑의 실체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믿는 우리와의 관계성입니다. 즉 사랑은 상대을 아는것과 그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문장가인 유한준이란 사람은 “아는 것이 참된 사랑이다(知則爲眞愛 지즉위진애)”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그보다 2000년전에그의 편지에서 그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성경은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19)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아셨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우리자신을 아는 것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그 만큼 사랑하시었습니다. 우리가 죄인인 것을 아시었고, 우리가 우리 힘으로는 우리를 구원할수 없음을 아시었습니다.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창8:21)하고 노아에게 약속하십니다. 죄인이면서도 어처구니 없게 인간은 죽음이라는 숙제를 놓고 수천년을 갈등합니다. 우리의 죄와 우리의 실체를 속속들이 아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죄인 자체로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5:8)하십니다. 그리고 사랑의 사도 요한은 그것을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일4:9-10).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철저히 아셨고, 사랑하셨기에, 우리가 원하는 문제를 풀어주시기를 기뻐 하시어 독생자까지 우리에게 주십니다.
<사람의 사랑>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를 알지 못한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요일 4:7-8) 하십니다. 사도요한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아는것 만큼 하나님을 알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기를 원하는 것은 “성경”이라는 특별 계시를 통하여 알려주고 계십니다. 자신이 아는 어떤 사람을 그 사람을 모르는 사람에게 소개하듯,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소개해 보신적이 있으신가요? 하나님을 어떻게 소개하실지 한번쯤 생각을 정리해 보신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알게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요일 4:20-21). 형제를 사랑하는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것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가 됩니다.
<온전한 사랑>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과 또 우리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만날때, 그곳에는 온전하고 충만한 기쁨이 있게됩니다(빌2:4).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하나님과 형제를 사랑하는 것)를 행하는 것이고, 이것이 결국은 세상을 사랑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 복음에 완성이 됩니다(요일 4:14-15). 즉 세상에 있는 우리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his love is perfected in us), 세상에 있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이(By this is love perfected with us)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가 될때 온전한 사랑의 완성을볼수 있습니다 (요일 4:12, 17).
이 온전한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두려움이 없게하고(4:18), 심판의 날에 대하여는 담대함을(4:17) 가지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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