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구원을 열방에 알리소서

시편 67:1-2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셀라),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

September 24, 2022. SaturDevo

호가호위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우가 앞서고 호랑이는 뒤에서 따라갑니다. 그러자 그들이 가는 길앞에 있는 모든 동물들이, 여우보다도 훨씬 큰 곰이나 들소들까지도 도망을 치는 모습이 보입니다. 물론 그 동물들이 도망을 간것은 여우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 뒤에 오는 호랑이를 보고 도망간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권력자의 위세를 이용하여 자신이 능력자인것 처럼 행세하는 것을 호가호위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종종 성경을 읽다보면, 그 성경에 주인공이 “나”인것 같은 착각에 빠질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내 능력이 되기나 한 것처럼 모든것에 자신이 있어집니다. 내가 갖은 믿음이면 예수님의 말씀대로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처럼 생각됩니다 (마 17:20).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안에서 못할것이 없다고 믿어집니다. 사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막9:23, 요 14:14). 그러나 물위를 걷던 베드로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갔던 것 처럼(마14:30), 우리는 다음 순간 진짜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 방콕에 온지 두주째 입니다. 오리엔테이션을 끝내고 단명팀 팀원들을 만나 인사하고 그분들의 도움으로 길을 익히고, 버스와 교통편을 이용하는 법을 배우고 사역지인 선교 센터와 교회를 방문하고, 또다른 파트너팀의 팀원들을 만나 인사하고 얼굴을 익히고 하는 일로 한주를 보냈습니다.

이제 어렴풋이 나마 지역에 대한 윤곽도 잡히는 듯하여, 그 분들의 도움으로 가 봤던 곳을 혼자 가보기도 하고,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 보려고 시도해 보지만, 역시 쉬운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특히 이나라의 문화 때문인지, 내가 어려움에 쳐했을때 외국인인 나에게 기꺼이 친절하게 도움은 주지만, small talk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대화를 해 보려는 나에 시도에는 무색하리만큼 거리를 두는 이 나라 사람들을 보며 절벽을 마주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들과 부딪히고, 그들과 스쳐가고 얼굴을 마주하며 드는 생각은, 분명히 하나님께서도 이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믿음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이사람들을 사랑하는데, 어떻게 저들에게 다가가야 할지 서툽니다. 이 사람들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신 하나님의 귀한 백성이고, 하나님의 어린양의 천국예배에 참석해야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왜 아직까지 이들은 복음에 마음을 열고 있지 않은지 안타깝습니다. 어떻게 그들에게 복음을 들려줄수 있을지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하나님은 역사하고 계시다는 믿음과 확신을 제게 주심을 감사합니다. 컴뮤니케이션의 80% 이상이 말이 아니라 제스쳐와 표정과 감성이라고 합니다. 방콕 홈에서 아침마다 나오며 인사하는 아주머니가 생겼습니다. 차타는 곳까지 나를 오토바이에 태워주겠다는 젊은이를 알게되었습니다. 오늘은 쏭테오를 탔는데 어떤 연세드신 분이 말을 걸어옵니다. 그분은 태국어로 나는 영어로 했지만, 단명까지 간다는 것은 분명히 통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분은 나보다 먼저 내리셨는데, 내 차비까지 내 주시었다고 하며 손을 흔들고 가십니다. 얼떨결에 차비 신세를 졌습니다. “와우, 이런 분도 계시구나” 감사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사역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같은 쏭테오 차를 다시 그 분과 같이 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알아보고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오는 차비는 내가 낼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환하게 웃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내가 다가 갈때 얼굴을 돌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생각지도 않게 만나는 영혼도 있습니다.

선교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5:14),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나에 일인줄 믿습니다.

성경의 이야기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온 열방이 하나님 앞에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게 할 하나님의 큰 계획의 이야기인줄 믿습니다 (계7:9). 주인공인 하나님의 이야기라는 큰 그림을 보기 위하여 우리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의 그 큰 그림의 어떤 부분에 놓여 있는지를 볼수 있을 것입니다. 붓 끝이 스쳐간 한 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그것이 우리에게 축복인것은 우리가 온전하신 하나님의 큰 계획안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시어 그분의 일을 마치실 줄 믿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하나님을 등에 업고 걸어가는 여우와 같은 존재가 아닌가합니다.

시편 67:1-2는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축복한 이유는 단지 그들만을 위한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메세지가 열방에 전파되도록하게 하려는 궁극적인 목적을 마음에 두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열방에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려는 줄 믿습니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