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넘어서

마태복음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January 14, 2023. SaturDevo

요즘 TV를 보면, 부당한 학대나 배반을 당하고 원수를 갚기위해 평생 이를 악물고 힘을 길러 자기에게 악을 행한 악당에게 복수를 하는 주제를 흥미있게 그리고 있는 영화와 드라마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원수를 갚기 위해 이를 물고 힘을 기르는 그 모습이 왠지 응원해 주고 싶다거나 격려해주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슬픈생각이 먼저 들게 됩니다. 원수에게 복수를 해 주고 나면 그에 삶은 평안하고 행복할까요? 원수갚는 일이 원수당하는 일보다 결코 쉽지 않습니다. 실제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에 안타깝습니다. 과거를 끊어내지 못하고 과거에 묶여 현재를 불행하게 사는 삶입니다.

오자서는 초나라 사람이었는데 파렴치한 평왕에게 죄도 없이 아버지와 형을 잃고 집안이 망하고 혼자만 간신히 도망가며 복수를 결심합니다. 그는 오나라로 가서 오왕 합려를 도와 성공하여 결국 초나라로 쳐들어 가 승리합니다. 그러나 그땐 이미 평왕이 죽은 후였지만,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그 뼈를 엎어놓고 쇠도리께로 삼백대를 쳐서 원수를 갚아 복수의 화신이라는 별명까지 얻게됩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이를 물고 원수를 갚았다고 하는 오자서의 마음은 후련하였을까 궁금합니다. 그러나 그도 월나라를 쳐서 망하게 한 월의 원수가 됩니다. 월왕 구천은 와신상담하며 오왕 부차를 꼬여 결국 오자서를 죽이게 합니다. 원수 된 사람과 복수한 사람이 똑 같이 죄인되어 희생되는 슬픈 일을 보고 있습니다. 모두가 슬픈 과거에 연연하여 오늘을 망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에게 원수되는 짓을 한 사람이나, 사람을 죽인 사람도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실까요? 이를 악물고 복수한 사람를 정당방위라고 칭찬해 주실까요? 안타깝지만, 우리 생각과 틀리게 첫번째 질문은 ‘yes’이지만(딤전 1:15), 두번째 질문은 ‘No’(롬 12:19, 히10:30)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되어 이땅에 오신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 9:13). 하나님께서 이땅의 사람들에게 원하는 것은 서로 친절하게 사랑하며 사는 것이지 종교적인 의식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긍휼은 하나님의 사랑(Hesed /Steadfast love)를 의미합니다(호6:6). 감정에 따라 하는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의지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이 긍휼을 원한다는 말씀이, 예수님이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말과 통하며 복음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마태 (레위(눅5:27))는 세리였습니다. 세리나 창녀는 유대인들에게 가장 멸시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죄인입니다. 예수님이 세리와 함께 먹는것을 바리새인들이 정죄하며 예수님을 대적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대적하는 바리새인들은 또한 죄인들입니다. 그 대표격 되는 사람이 사울(바울)이란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이 사람들이 예수님의 사람이 되는데 하자가 없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 사람들이 죄인이기에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십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입니다 (롬3:23). 하나님께 잃어버린바 된 영혼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죄없는 사람으로써 이땅에 오실 이유가 있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과거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데 전혀 장애물이 되지 않습니다. 의인이 아니라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요셨다는 말씀은(눅19:10)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잡아들이고, 죽이는데 앞장 섰고 예수님의 역사를 방해했던 바울이 회개로 자신의 과거를 뒤로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라고백하며, 죄인을 용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찬송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유대백성들의 착취하던 세리였던 마태가 하나님의 제자될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과거는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것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죄없는 사람으로 이땅에 오시어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무리 큰 죄도 그 분께 용서 받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로마서 5:20 은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과거를 넘어서 새 사람으로 살수 있는것은 우리죄를 맡아주신 예수님의 은혜로 인합입니다. 과거의 죄와 잘못은 하나님께 나가는데 어떤 장애도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긍휼을 받을 요건이 됩니다. C.S. Lewis는 말합니다. 기독교는 자신이 회개할 어떤 죄도 지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용서받을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과는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과거에 메여 슬픈 고통을 앉고 씨름하는 대신, 과거를 이기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사십시요.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갑시다. 예수님은 어떤 끔찍한 죄나 고통이나 악도 우리를 과거에 묶어놓지 못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