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복음 8:50.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February 4, 2023. SaturDevo
누가복음 8:40-56은 예수님과 회당장 야이로와 혈루증으로 고생하는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공관복음서(마 9:18-26, 막5:21-43) 모두에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사건을 만났을 땐 사역의 전성기를 보내고 계신 때 입니다. 예수님을 찾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 조차도 예수님께 쉽게 다가가지 못할 때 였습니다. 바다를 잠잠케하시고, 군대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시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가는 곳마다에서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에워 쌓이시게 됩니다. 이날도 예수님이 바다 건너에서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셨는데 예수님을 발견하고 무리가 모여 듭니다.
그때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 앞에 나와 발아래 업드려, 외동딸이 죽어가고 있으니 예수님이 오셔서 고쳐달라고 사정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그를 ‘관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마9:18). 예수님은 선뜻 그를 따라 나섭니다. 그러나 무리가 밀려들면서 길이 더뎌집니다. 죽어가고 있는 딸 때문에 한시가 급한 야이로은 속은 타들어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업친데 겹친격으로 또 다른 사건이 터집니다.
열두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며 병을 고칠려고 의사를 찾아다니며 재산까지 다 탕진한 한 여인이(막5:26) 절망 가운데 마지막 소망을 예수님께 걸고, 예수님을 만지면 낫겠다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뒤로 와서 그의 옷가에 손을 대고 혈루증이 낫게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일이 그것으로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예수님은 가던 길을 멈추시고, 누가 자기에게 손을 댔느냐고 묻습니다. 이태원 참사 비슷한 상황에서 예수님과 부딪힌 사람이 한둘이 아닐텐데, “다 아니라”고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 어이 없는 질문에 예수님을 나무라는 식의 대답을 합니다. “주여 무리가 밀려들어 미나이다”. 이런 상황이 제일 화가나고, 속이 상한 사람은 야이로였을 것입니다. ‘아이가 죽어가고 있는데… 누가 예수님을 만진것이 무슨 문제라고 그것을 가지고 시간을 끌고 계실까?’ 이때,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 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리어 그 손 댄 이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고백합니다. 그때서야 예수님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하시며 그녀를 보냅니다.
그런데 예수님에게 그 일이 왜 그토록 중요했을까요? 그 여인은 세상에서 소망이 끊어진 상태에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소망을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사람속에 나설수 없는 불결한 여인이어서(레15:25) 야이로처럼 예수님앞에 나서 간구할 수도 없은 사람으로 감춰진 믿음으로 예수님을 만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능력이 어떻함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비록 가난하고 불결한 여인일 지라도, 소망이 다한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갖은 소망이 믿음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를 우리에게 가르치시기 위하여, 또 그 여인의 믿음이 부끄러운 믿음이 아님을 확인시키기 위하여 여인으로 하여금 입으로 사람들앞에서 고백하게 합니다. 믿음은 사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다음절을 보면, 그 여인의 일 때문에 예수님이 머뭇거리는 동안 아이가 죽었습니다. 그 여자 때문에 야이로에게 간신히 붙어있던 소망이 끊어진 상태입니다. 그런 야이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주위 사람들이 예수님을 정신 나간 사람 취급하는 가운데 예수님은 세명의 제자와 부모만 데리고 아이의 방으로 가서 그 아이를 살려내십니다. 그리고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11장에서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려 내실때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나사로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요11:15)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더딤은 야이로와 우리에게 더 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려 하심이었습니다. 세상 격언은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라고 하지만 하나님은 스스로 돕지 못하는 믿는 사람을 돕습니다. 야이로의 딸이 죽어갈땐 살아날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딸이 죽었을때 야이로의 세상적인 시각의 소망은 끊어집니다. 소망이 끊어진 그곳에서 예수님은 야이로에 믿음의 소망을 말합니다. 딸이 죽었다는 것을 그 집에 모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데 예수님은 그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딸이 살아 나온다면 예수님이 그 아이를 살리신것이 비밀이 될수 없는데 예수님은 그 일을 발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달리다굼”하는 말씀으로 아이를 살리셨다고 말하면, 예수님을 조롱하던 믿지 않던 밖에 있던 사람들은, 야이로의 소망없는 곳에서 소망을 갖은 믿음으로 딸을 살렸다고 말하기 보다는, 예수님을 마술사라고 소문을 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갖는 믿음은 세상적인 소망이 끊어진 상태에서 갖는 믿음의 소망입니다. 우리에 구원의 소망이 그 믿음입니다. 믿음은 모든 소망이 끝났을때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입니다. 어떤 절망속에서도 우리가 소망을 갖을 수 있는 것은 그 소망을 주시는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 귀한 믿음은 감춰져서는 안되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서고 우리가 크리스찬임을 밝혀야 하는 이유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기적이나 행하시는 마술가로 생각하는 믿음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은 소망이 다한 곳에서도 소망을 갖게 하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귀한 믿음임을 기억하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