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신뢰성

신명기 4:4.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

February 11, 2023. SaturDevo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도록 설득하고 확신을 주기 위하여 권고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땅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이집트에서 그들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광야를 지나는 동안, 그들의 눈으로 하나님의 기적과 능력을 직접 보았는데도, 작은 어려움만 만나면 불평하고 돌아서는 그들의 불순종으로 인해 일주일이면 갈수 있는 길을 40년을 광야에서 헤메게 됩니다. 이제 하나님의 허락하심으로 40년째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요단강 건너편모압평지에서 모여있습니다. 신명기는 그곳에서 모세가 다시한번 하나님의 율법을 설명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인도하심을 강조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권고하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는”너희는 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다바크’라는 말로 영어성경은 hold fast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꽉 붙들고 있는 사람은 오늘날까지 살아 남았다’라고 합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꽉 붙들수 있습니까? 결국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써주신 십계명과 모세를 통하여 그들에게 준 율법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믿고 그 말씀을 따라 삶을 살아간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5-7장은 우리가 잘 아는 산상수훈이라는 예수님의 설교입니다. 예수님은 설교 첫 머리에서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보통, 팔복이라고 하는데, 그 여덟가지 중에 하나에도 들지 못한 사람은 그곳에 아무도 없었을 줄 압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칭찬해 주십니다. 그들에게 이렇게 살아라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모세의 율법을 따라 살고 있는 그대로의 그들을 축복하시었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소금과 빛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마5:3-16). 그리고 나서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마 5:17). 여기서 “율법이나 선지자”는 성경의 또 다른 표현법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그 말씀의 “일점 일획”도 떨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것 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말씀의 작은 것 하나라도 허투이 여기고 무시하지 말것을 말씀합니다. 여기가 모세의 권고(신4:4)와 맞닿는 지점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모세의 가르침이 하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침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갑니다.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5:20).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꽉 잡고 있는 사람은 없다고 당시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들보다 더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해야만 천국에 갈수 있다는 말은 천국에 가라는 말인지 그만 포기하라는 말인지 혼동스럽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을 재 해석해 줍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바, …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하는 말로 시작하여 모세가 전해준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말해 줍니다. 그리고 5장 마지막에 다시한번 쐐기를 박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 혼동스럽던 청중의 마음에 절망을 주는듯한 말씀입니다.

모세의 율법에서 더 나아가서 모세의 율법에 꽉 붙어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의로워야 한다고 하시더니, 이젠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십니다. 부자 청년에게 재산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마 19:21, 막10:21, 눅18:22)는 말보다 더한 말입니다. 천국에 들어가기는 절망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절망을 주기 위하여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부자 청년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절망으로 오해하고 예수님을 떠나는 바보짖은 하지 마십시요. 예수님은 우리가 듣기에 부담스러울지라도 진리를 말씀하시지만 소망을 주시는 분입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 예수님은 우리에게 밝은 미래와 희망을 주시는 분입니다. 마태복음 5장은 6-7장과 어울러 지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이 시대에 따라 살기를 기대하는 도전적이지만 실용적인 윤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실존적 진리를 기억하십시요. 아무리 깊은 절망속에도 기독교에는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절망 가운데서도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는 복음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같이 결코 온전해 질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힘으로는 결코 천국에 갈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우리가 사랑하는것보다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요1:14)를 꽉 잡고 있는 사람은 마태복음 5장의 말씀이 하나도 혼동스럽지 않고, 절망스럽지 않습니다. 오늘까지 생존하여 곧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 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꽉 잡고 있는 사람은 “오늘까지 생존하여” 곧 천국에 들어가 영생을 얻을 사람입니다. 이것이 성경 전체, 구약부터 신약까지,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복음이고 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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