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싸움

갈라디아서2:20.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February 18, 2023. SaturDevo

디모데전서 6:12에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모순어법(Oxymoron-명백히 모순되는 용어가 함께 나타나는 비유적 표현 )입니다. 어떤 말을 강조하기 사용하는 어법입니다. 여기서는 말할 나위없이 ‘믿음의 선한 일 행하기’를 강조하기 위하여 쓴 표현입니다. 싸움을 하기 위하여는 의지가 있어야 하고, 힘을 들여야 하며, 도전하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선한일 행하기’를 싸움을 하듯 ‘의지를 가지고, 힘과 노력을 들여서, 도전하는 용기로’ 능동적으로 하라는 말 일 것입니다.

매해 2월 17일은 <Random Act of Kindness Day>입니다. 올해는 어제였습니다. 친절은 결코 잘못 될 수 없고, 지나칠 수도 없습니다. Random Act of Kindness Day의 기본 아이디어는 친절함을 키우고 누군가의 하루를 밝게 만드는 것입니다. Random Acts of Kindness Day는 1995년 콜로라도 주 덴버에서 The Random Acts Of Kindness Foundation이라는 비영리 단체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친절한 행위는 중요합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작은 친절한 행위가 도미노 효과처럼  다른 친절한 행동으로 더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며 시작한 날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거나 믿지 않는 사람이거나 정신병자가 아니라면 친절한 행위를 싫어하거나 혐오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인생의 열두가지 법칙>의 저자 조르단 피터슨은“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일을 가치 체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두고 해야 할 일을 해 나가면, 인생이 점점 충만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라고 말합니다. 작은 친절이 하루 아침에 세상을 더 좋게 만들지는 못하겠지만, 우리 모두가 어렵지 않은 작은 친절을 실천할때 궁극적으로 세상은 더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솝우화>를 쓴 이솝도 이렇게 말입니다.  “아무리 작은 친절이라도 헛되지 않습니다.”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엡 6:8). 선한 일을 행하는데는 어떤 사회구조나 신분도 제약이 될수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공산독제 사회이거나, 민주사회이거나, 봉건사회이거나 또는 자본주의 사회이거나, 신분이 높거나 낮거나 돈이 있거나 없거나 선을 행할 수 있고, 행하여야 하며, 하나님 앞에서 선을 행하지 않아야할 어떤 이유도 없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의 친절과 선을 행하는 것은 것은 사실 하늘의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그 선을 행하기를 싸움을 하듯 적극적으로 힘을 다해 다른 사람들 보다 능동적으로 할 것을 권고하십니다(딤전 6:11-21).

이렇듯,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도 친절을 베풀고 선을 행하는 것을 가치있는 일로 여기고 선을 행하고 싶어서 Random Act of Kindness Day까지 만들어 세상을 더 나아지게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는 사람의 본성입니다. 성악설을 주장하는 순자도, 성선설을 주장하는 맹자도 군자를 이야기 하지만 온전한 군자는 인류역사를 통 털어도 손가락을 몇개로 꼽을수 있을까 말까 합니다. 복음의 사도라는 바울도 이렇게 한탄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1-24).

친절을 베푸는 날까지 만들었다는 말은 역으로 사람들이 정말 친절을 베풀지 않는다라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사람들이 이기적이고 메말른 삶을 살고 있으면 이런 날까지 만들었겠습니까? 사람은 이성으로는 내가 먼저 작은 친절을 베풀면, 그 친절이 도미노 현상처럼 퍼져나가며 세상을 밝게 만들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어떤 때는 또는 기분 좋을때, 창조주에 대한 감사가 느껴질때는 이성적 사고를 하고, 그것을 실천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순간 우리속에 있는 악이 고개를 들며 우리는 이기적이고 작은 사탄이 되기도 합니다. 그것이 바울의 고백입니다.

그것을 알기에 바울은 또 갈라디아서 2:20을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죽이는 것입니다. 악한 본성을 가진 자신을 죽이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미운 사람에게 어떻게 친절할수 있겠습니까? 나는 못합니다. 그러나 내 안에 살고 있는 예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것을 선한 싸움이라고 합니다. 나와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구원을 위해서 이기도 하지만, 오늘 세상을 조금더 살기 좋게 만드는 가치있는 일을 이뤄나가기 위해서 이기도 합니다.

주저하지 않고 무모하게 친절을 실천하기 원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를 맏기십시요.  우리의 삶은 분명 더 쉬워질 것입니다. 쉬워질 뿐만 아니라, 우리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영생을 얻는 싸움입니다. 우리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더 노력하게 함으로써 누군가의 하루를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가장 작은 것이 가장 알맞는 때에 누군가에게 가장 큰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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