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적 기도

호세아 9:14. “  여호와여 그들에게 주소서. 무엇을 주시려 하나이까?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젖 없는 유방을 주시옵소서”

February 25, 2023. SaturDevo

성경을 읽다 보면 사랑의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받아 들이기 힘든 구절을 만날때가 종종 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놓고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젖 없는 유방을 주시라”고… 하나님께 소원을 이야기하는 것을 기도라고 하지만, 이것은 기도가 아니라 저주입니다. 하나님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불행을 내려 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저주를 호소하는 시편을 Imprecatory Psalms(저주 시)이라고 합니다. 즉, 재앙과 멸망과 하나님의 진노와 적들에 의한 심판을 불러 일으키는 것입니다. 호세아도 한 줄짜리 이지만 분명히 저주하고 있는 기도입니다. 성경에서 이런 기도를 보면 마음이 불편합니다. 과연 하나님의 백성이 이런 기도를 해도 되는가?

성경은 많은 형태의 기도의 표본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경배(출34:6-7), 감사(빌4:4-7), 숙고(시139), 절망과 비탄(시 88), 포기와 헌신(눅22:42), 간청(마 7:11), 도고(딤전 2:1)등 다양한 기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호세아의 기도도 또다른 독특한 한 종류입니다. 호세아 9장은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실망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언약은 희망과 기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을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 같이 하였으며 너희 조상들을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 같이 하였거늘” (호9:10). 그러나 그런 관계는 하나님 편에서 보면 재앙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인 이방신 바알에게 돌아 섰습니다. 이 모습을 호세아는 여러가지 비유(난잡한 아내, 무심한 어미, 사생아, 감사할 줄 모르는 아들, 암소, 무성한 포도나무, 야생포도등)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끝내 돌아올 줄 모르는 에브라임에게 하나님은 분노합니다. 에브라임은 이스라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에브라임은 북 이스라엘의 중심에 있는 족속으로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부정적인 이름으로 호세아는 35번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진노를 선포하는 중에 호세아는 자신의 기도를 끼워 넣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진노를 발하실때, 선지자는 보통 그 백성을 위하여 중보하는 기도를 하는 모습을 봅니다(창 18:22-33, 출 32:11-14, 렘14:13-22). 그러나 호세아의 기도는 중보기도가 아닙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진노에 중보하는 대신 하나님의 심판에 동의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쉬운 종류의 기도는 아닙니다. 그러나 때때로 필요한 기도라고 여겨집니다. 악한 사람이 의도적으로 자신을 죄에게 내 던질 때 그 사람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미치는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 부딪칠때 성경이 저주시를 포함하고 있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하게 됩니다. 저주시는 온전한 악을 향한 시일 수 뿐이 없습니다. 북 이스라엘 또는 에브라임은 끝내 돌아서지 못합니다. 그리고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고, 그곳은 나중에 예수님 당시엔 사마리아인이라는 명예롭지 못한 이름을 갖게 됩니다. 믿는자의 기도는 예언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기에 그 분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합니다. 선지자의 기도 뿐만 아니라 모든 믿는 사람의 기도는 예언입니다.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고전14:3). 그래서 우리는 축복의 예언을 하고, 병낫기를 예언하고, 밝은 미래를 예언하고, 영혼 구원을 예언합니다. 이것이 선하신 하나님의 뜻인 줄을 믿는 사람은 알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시간입니다. 그 만남은 정해진 틀 안에서만 이루어 지는 진부한 만남은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고전 6:12).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만남은 창조적 이고, 새로움의 발견입니다. 호세아의 예언적 기도는 이스라엘을 심판 하시는 하나님께 동의 하지만 또한 그 너머까지 바라봅니다.

호세아는 그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예언적 말씀를 합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호2:23).

호세아의 예언적 기도는 복음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이라 부름받지 못하던 이방인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심기고, 긍휼을 약속받지 못한 우리가 긍휼을 받게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총을 받게 됩니다. 선지자의 예언적 기도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도달한 복음의 은총의 날을 흘려 보내지 마십시요.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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