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행전 7:51-53.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March 4, 2023. SaturDevo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제자들과 믿는 사람들의 초대 교회는 한껏 사기 충천해 있습니다. 제자들을 통하여 기적이 일어나고 당장 내일이라도 예수님이 다시 오실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재산을 팔아 교회에 바치며 공동생활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공회에 잡힐지라도 감옥문이 열려지는 기적 속에서 거침없이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에게 담대하게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때 분배가 공평하게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는 작은 문제가 내부에서 발생합니다. 지혜 가운데 제자들은 일곱 집사를 선출해 안수하여 공평한 분배의 임무를 부여합니다. 이후 문제는 무난히 해결되고 교회는 나날히 부흥되고 제사장들 까지도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이러한 때 엉뚱한 곳에서 일이 터집니다. 맡은 일 뿐만 아니라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며 열심이던 스데반 집사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논쟁에 휘말리게 됩니다. 스데반 집사를 당해 낼 수 없었던 이 유대인들은 사람들을 매수하여 스데반을 모함하게 하고, 스데반집사는 공회에 잡혀가서 자신을 변증해야 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사도행전 7장은 스데반의 변증인데 사도행전에서 제일 긴 담론이기도 합니다. 매우 긴 변증이기 때문에 집중하여 읽지 않으면 논점을 잃기 쉽습니다. 사실 7장은 공회 앞에서 예수님을 증거(Witness)하고 유대인들을 기소하는 내용입니다. 스데반은 구약의 역사를 선택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역사 교훈을 이스라엘이 현재 메시아를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어 증거로 대며 고발자들을 돌이켜 고발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거부했기 때문에 참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한 사람들이됩니다. 사도행전 7:51-53은 그 기소의 결론입니다. 그러나 그 기소에 대하여 바른 판결을 내려야 할 공회는 바른 판결을 내린다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됨을 알기에 대신 스데반에게 돌을 던지는 판결을 내립니다. F. F. 브루스는 이것을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판사들이 그들의 이전 결정이 비극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한, 스데반에게도 신성모독죄로 유죄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데반은 결국 최초의 순교자(Martyr <witnessing to the point of death>)가 됩니다.
스데반 사건은 사도행전에서 누가의 주요 논제의 예를 제공합니다. 그것은 교회의 성장과 복음의 전파는 인간의 일이 아니라 오히려 성령께서 믿는자 가운데 역사하시기 때문에 교회가 성장하고 복음이 전파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행전은 수퍼스타들의 이야기나, 기획 프로그램의 이야기가 아니라 성령께서 길을 인도하시며 영적 이해의 새로운 전망을 열어 주시고 새로운 지리적 영역에 복음을 전파하고 계시다는 것을 누가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건은 스데반이 최초의 순교자가 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습니다.
첫째, 사람의 목적과 성령의 의도가 어떻게 틀린지를 볼수 있습니다. 제자들과 믿는 사람들은 그에게 분배의 일을 맡기기 위한 목적으로 구별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가 어떻게 분배의 일을 하였다는 것을 기록하기 보다 세계 복음화의 최 전선에 서게하는 사람이 되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빌립의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행8:4-40). 이때 까지도 사도들은 예수님의 복음 사역을 성전 중심의 유대인들 속에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의 죽음은 복음화가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야(행1:8) 한다는 성령의 역사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상징적으로 스데반은 세계복음화의 씨앗입니다(행8:1). 아이러니하게도 스데반의 죽음의 증인이 되었던 사울(바울)은 그 씨앗을 심고(고전 3:6) 세계 복음화의 터를 닦는(고전 3:10) 사람이 됩니다.
두번째는 이스라엘 역사의 바른 해석을 통하여 구약의 전통을 새롭게 이해하는 지평을 열게 됩니다. 스데반은 유대 율법과 예배의 타당성을 지지하면서도 땅도, 율법도, 성전도 예배의 중심이 아니라고 암시함으로써 그것을 소외시킵니다. 그리스도가 중심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택하신 리더들을 거부하는 것은 스데반의 연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며(행7:9, 27, 39, 48), 예수를 거부하는 것으로 절정에 이릅니다(행7:52). 유대인은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습니다. 성령을 받지 못했기에 하나님의 백성이 될 마음도 없습니다. 성전이 아니라 교회가 중심이 됩니다.
세번째는 스데반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는 것이 유대인 됨이나 율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에 대한 이해의 새로운 수준의 복음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스데반의 변증은 모세를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표현함으로 이스라엘의 성전 예배가 일시적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위한 씨앗을 포함시키고 있습니다(행7:38). 그리스도 안에서 혁신적인 예배의 재해석, 열방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 등이 암시됩니다. 열두 사도는 지금까지 유대인의 예배에 급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성전에 가서 기도하며 그곳을 예배의 중심지로 삼아 성전 제도가 계속될 것임을 암시합니다. 그들은 민족 집단으로서의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가정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수준의 스데반의 변증은 사도들의 이해의 정도를 뛰어넘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있어서 몇 가지 극적인 변화를 예고합니다.
스데반의 죽음과 유대교 신앙에 대한 재평가로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이야기는 완성됩니다. 누가는 사도들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예루살렘에서 증인이 되었는지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8장 이후에서 누가는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되는 복음을 보여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