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 vs 부활 사상

요한 복음 11:50.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March 18, 2023. SaturDevo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 중에 하나는 제레미 벤담입니다. 그의 사상은 그의 제자 스튜어트 밀이 표현한 말에 의하면,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란 말로 요약할 수 있는 공리주의입니다. 결과를 중요시 하는 이 공리주의 사상은 효용 극대화의 경제원리와 연결되며,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얻는 경제적 이윤 추구를 지향합니다. 공리주의 사상은 치명적인 오류가 있는 생각이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그럴듯하게 들리는 사상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상이 근대의 내노라 하는 철학자들이 평생을 연구해서 박사 학위를 받으며 생각해 낸 생각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이천년전 예수님 당시에도 이런 생각을 하며 사람들을 홀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야바라는 사람인데 예수님 당시에 대제사장을 지낸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의 대제사장은 공회(Sanhedrin)의 수장이었습니다. 하스모니안 왕조 말기부터 부패하기 시작한 대제사장직은 그때 부터 돈을 주고 사는 직책이 되어갑니다.  헤롯왕조에서는 헤롯이 마음대로 지명하였고, 아켈라오가 퇴각하며(AD 6) 로마가 지명하게 됩니다. 그때 대제사장이 된 사람이 가야바의 장인 안나스입니다(요18:13). 안나스는 로마가 직접 유대를 통치할때 부터 아우구스투스가 죽고 티베리우스가 황제가 되어 로마를 통치할때까지 9년을 대제사장을 합니다. 로마에 황제가 바뀌자 유대에서도 그 틈을 타서 출세를 하려는 사람들이 활발한 뇌물 로비를 합니다. 아우구스투스가 통치할때는 유대총독은 매3년마다 바뀌게 됩니다. 그러나 티베리우스는 총독을 장기간 두게 됩니다. 당시 총독자리는 통상적으로 재물을 모으는 자리였습니다. 아우구스투스가 지명한 루푸스 티네우스(Rufus Tineus) 총독이 임기를 마치는 15년부터 티베리우스의 지명으로 총독을 하게되는 발레리우스 그래투스는  마음대로 총독을 갈아 치워 헤롯시대를 연상케 하는 감정을 만들어 유대인들을 자극합니다. 안나스가 대제사장에서 쫓겨나던 AD15년 부터 매해 대제사장이 바뀝니다. 뇌물을 더 많이 내는 사람에게 돌아갑니다. 그러다가 유능한 권모술수와 정치수완의 대제사장 가야바가 등장합니다. 가야바는 AD15년 부터 AD 36년 까지 18년동안 1세기에 가장 오랫동안 대제사장직을 유지한 사람이 됩니다. 그래투스에 이어 본디오 빌라도가 쫓겨나던 해까지 대제사장을 합니다. 그러나 가야바가 대제사장직에서 쫓겨나고 나서도 네명의 아들들을 대제사장으로 만든 안나스는 그 당시 대제사장 가야바에 못지 않은 실세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체포하여 먼저 안나스에게 데려가는 일이 있고(요18:13), 나중에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안나스는 주역을 담당합니다(행4:6,눅3:2). 사두계열의 대제사장은 공회를 통하여 유대인의 삶을 관장하고 있었고, 로마총독은 치안과 사람을 죽일수 있는 사법권을 행사하고 있었으며, 바리새인들은 종교생활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유대의 정치상황은 로마총독과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과의 복잡한 역학 관계 속에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요한 복음서에 나타난 일곱표적을 행하시는데 11장은 그 마지막 일곱번째 표적인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기적을 행하십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최 정점에 이른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 지도자들에게 그들을 위협하는 무시할 수 없는 도전 요소로 떠오른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를 지켜야 하는 일이 최급선무 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부패한 정치상황 속에서 어떻게 그들의 지위를 얻었으며 유지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나사로를 살려내는 일곱번째 표적후 그들은 공회를 소집하여 대책을 궁리합니다(요11:46-57).

명목상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그를(예수님)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요11:48)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사람들을 얻어 군사행동을 한다면, 로마에게 성전과 나라를 뺏아길 것이라고 믿은것 같습니다. 반쪽짜리 자치권마져 빼앗기고 자신들의 지위마져 잃을것을 걱정합니다. 이들의 생각은 모세와 함께 가나안땅 앞 바란광야에 다다른 이스라엘사람들의 두려움처럼(민14:3-4), 패배의식에 젖어 있는 이기적인 노예근성의 사고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민 13:33)게 보고 있습니다. 그들의 해결 방법은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라고 말한 자기들 조상같이, 그들중 최고 지도자라 하는 대제사장 가야바는 모인 사람들을 무시하며 사악한 묘안을 냅니다.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요11:49-50). 결과만 보는 그럴듯한 공리주의입니다. 가야바는 조상의 유전도 하나님도 철저히 배반하는 무례한 대제사장이었고 유대인들은 그를 따랐습니다.

가야바는 민족과 백성을 걱정하는 듯한 말로 백성들을 속여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말은 대제사장으로써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을 예언하는 말이 되었고, 그의 걱정은 30여년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이스라엘이 전세계로 흩어지는 실제 사건이 되고 맙니다. 성경은 이것을 이렇게 말합니다.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요11:51-52).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예수님을 단지 민족과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심으로 끝나게 하지 않으십니다. 가야바와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여 자신들을 지키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창50:20) 예수님을 죽음에서 일으키세우시고 모든 잠자는 자의 첫 열매와 그리스도에 속한 자의 새 아담이 되게 하십니다(고전 15:20-23).

공리주의가 사람의 생각이라면 부활사상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는 분이십니다. 죽음을 부활로 바꾸십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보다 높다고 하십니다(사55:9).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복음이 하나님의 부활사상이며 기독교의 핵심 사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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