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사기 2:3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September 23, 2023. SaturDevo
세탁기 같은 전자 기기를 사면, 항상 따라오는 것이 작은 사용법 책자입니다. 그러나 그 책자가 빼곡히 영어로 들어 차 있고 읽어보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충 조립해서 쓰면 그런 대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 기기의 사용법을 자세히 읽어 보지 않고 아무데나 던져 놓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1-2년 쓰다보면 어느순간 덜커덕하고 고장이 납니다. 그러면 그 때서야 어디에 두었는지도 잘 기억할 수도 없는 그 사용법 책자를 뒤져 읽어 보며 무슨 일인가 조사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에게 약속한 대로(창22:17), 이스라엘 백성이 에굽에서 그 수가 늘어나고, 또 종이 되어 고통 받고 있을때, 그들을 종된 땅에서 구원해 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나안땅을 주시면서 하신 한가지 명령이 그땅 주민을 그 땅에서 온전히 몰아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신 7:2-5, 20:16-18). 왜요? 그들이 악하기 때문이랍니다 (신9:4-5). 그들의 죄악으로 그 땅이 더러워 졌기 때문이랍니다 (레18:25).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보호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신 12:29-32).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들이게 하여 몇번의 큰 전투를 통하여 그 땅을 제압합니다. 그리하여 이제 그곳에는 이스라엘을 대항을 세력이 없게 됩니다. 그후 모든 지파에게 땅을 분배하여 줍니다. 각지파는 그들에게 분배된 땅에서 그 땅의 족속들을 완전히 몰아내고 죽이고, 그들의 신당을 철저히 파괴하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사기 1장은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슴을 적고 있습니다. 그들의 행진을 막을 만한 세력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19절부터 끝절 36절은 “쫓아내지 못하고”를 8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최소한 8지파가 그들을 완전히내 쫓지 않은 것입니다. 한국 성경에는 “쫓아내지 못하고”라고 나와 있지만, 영어성경(ESV)은 “did not drive out”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즉 ‘쫓아내지 못한’것이 아니라 ‘쫓아내지 않은’것입니다. 대신, 그들에게 “노역을 시켰”다고(사1:27)하고 있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 보다는 자신들 소견에 옳은 일을 한 것입니다(사17:6, 21:25). 세탁기를 사서 매뉴얼을 읽고 매뉴얼 대로 사용하지 않고, 매뉴얼을 무시하고 자기 좋은 대로 사용합니다. 기계가 새것일때는 그런대로 사용할 수 있을런지 몰라도, 때가 되면 고장날 소지가 다분합니다. 여호수아가 앞장 섰을 때는 하나님의 능력과 함께 하였기에 그들을 막을 세력이 없었고, 그래서 가나안의 세력은 형편없었지만, 마냥 그럴수는 없습니다.
그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한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사2:1-2). 모든 일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이어 일어나는 결과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성실하게 대한 이스라엘의 행동에 따르는 결과는 섬찟합니다.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사2:3).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사사기에서 격어야 만 하는 파란 만장한 우여곡절을 예고합니다.
이천 오백여년전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시할 만한 죄악’을 생각나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어 죄를 이기시고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신약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시어 영생을 주시었습니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한다는 말은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죄사함을 받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것을 고백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은혜안에서 우리에게는 아무리 큰 죄도 용서 받지 못할 죄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은혜 받는 일에도 우리의 얕은 생각이 들어갑니다. 작은 죄는 용서받지 않아도 될것 같은 생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작은 죄를 무시합니다. ‘이런 죄쯤이야 예수님앞에 내 놓지 않아도 내가 해결할 수 있어’하는 작은 죄는 그대로 안고 있습니다. 한발은 든든히 예수안에 들여놓고 있지만 다른 한발로는 세상의 가장자리 금을 살짝 밟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도 자랍니다(약1:15).
무시할 만한 작은 죄악이 우리 옆구리에 가시가 되고 올무가 될 수 있습니다. 구원 받은 사람은 죄를 마음속에 숨기지 않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마음속에 있으면 자라게 됩니다. 크든 작든 죄는 음지에서 자랍니다. 밝은 해볕에 드러날때 사라집니다. 마음속에 숨겨두면 자라지만, 예수님 앞에 내놓으면 없어집니다. 예수님의 열두제자 중에 하나가 되었던 가롯 유다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던 작은 욕심이 그도 모르게 자라나 그를 죽음으로 내 몰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