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한 인간 (신실하신 하나님)

시편 73:23.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October 21, 2023. SaturDevo

질투와 시기에는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Dr. Gary Collins는 말합니다. ‘시기(envy)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속한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출 20:17). 반면에 질투(Jealousy)는 우리가 소유한 것을 다른 사람이 빼앗아갈 것이라는 두려움입니다. 질투는 우리의 직업, 소유물, 평판에 적용될 수 있지만, 이 단어는 사랑하는 사람의 애정이 경쟁자에게 상실될까 봐 두려워할 때 발생하는 불안을 더 자주 의미합니다. 우리는 우리와 비교할 때 더 매력적이고 유능하고 성공해 보이는 다른 사람에게 우리의 배우자나 자녀가 꾀어질까 봐 두려워합니다.

시편 73편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실족 할 뻔한 아삽의 고백입니다. 사람들은 비교에 참 약합니다. 비교하면 누구나 넘어지기 일쑤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바나바와 비교하려다가 자빠졌습니다 (행4:37-5). 베드로도 두번씩이나 잘난 체하며 비교하다가 예수님께 꾸지람을 듣습니다(마 19:24, 요21:21). 아삽도 비교하다가 자빠질뻔 합니다(시73:3).

비교하는 사람을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자기를 칭찬하는 어떤 자와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그들이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고후 10:12). 믿는 사람이 실족하게 되는 것은, 세상을 바라볼때 입니다 (시73:3b). 즉 세상의 있는 다른 사람의 것을 부러워할때 입니다. 그들의 형통함을, 그들의 재물을, 그들의 분방함을 시기합니다. 자신이 신실하게, 절제하며 사는 삶이 헛일 처럼 느껴집니다(시73:4-11). 12절은 악인의 형통함의 요약입니다.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그러나 성경은 단언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6). 성가대장이었던 아삽도 세상을 바라보았을때, 자기도 모르게 십계명중에 열번째 계명을 범하게 됩니다.

그리고 왜 믿는사람보다, 악인들이 형통하고 잘사는지 번민하게 됩니다. 왜 다른 사람들은 건강하게 자기의 명을 다하는데, 오직 하나님만 믿어온 사람은 젊은 나이에 불치병이 걸려 고생하는지, 왜 정직하고 신실하게 사는 사람보다 사기치고 속이고 갑질하고 불법을 행하는 사람이 잘사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목사님이 아무리 그럴듯한 대답을 할지라도 변명같고 전혀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바로 살겠다고 양심있게 살겠다고 아둥거린 자신의 삶이 헛일 처럼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가 성소에 들어갔을때, 즉 하나님을 예배하며, 믿는자의 길과 믿지 않는자의 길이 분명히 다름을 보게 됩니다. 믿는자는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믿지 않는자는 잠간 있다가 사라질 안개같은 인생이고, 악인이고, 하나님으로 부터 나지 않은 세상사람입니다. 두 종류의 인간이 사람의 유한한 눈으로 볼때는 같은 인간인것 같지만, 그 둘의 길은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며 아삽은 하나님 앞에 세워진 인간의 실상을 보게 됩니다.

인간은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는 미련한 존재입니다. 이런 비교로는 결코 자신이 누군지 알지 못합니다. 도토리 키재기입니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알려면,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고후 10:18). 아삽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게됩니다.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양심이 찔렸나이다.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시73:21-22).

인간이 인간이 될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무지한 우리를 붙드시고 인도하시어 우리를 존귀한 존재가 되게 하시며, 영광으로 영접하십니다. 만물에 영장이 되게 하시고,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게 하십니다 (창1:26).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아삽은 그 신실하심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내가 우매 무지 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그럼에도 불구하고(nevertheless),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시73:22-23). 아삽이 시기하고 부러워 하던 인간은 무지한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는”자들의 생각엔 인간일지 몰라도, 하나님앞에서는 인간이 아닙니다.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73:20).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함께 하신 않으면, 사람은 그 순간 사람일 수 없는 연약하고 짐승같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없는 사람은 짐승이나 헛개비(Phantoms)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경계합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전 10:12).

아삽은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웠을때,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분명히 알고, 존재의 이유를 이해합니다. 내 육체와 내 마음은 연약하나 하나님이 내 마음의 힘이시고, 나의 삶에 몫 이라는 것을 고백합니다(시73:26). 욕체와 마음은 인간의 본질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살아가고, 살아가며 할 일, 즉 삶의 몫은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는 것이라는 것을 선포합니다(시 73:28). 주의 모든 행적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리고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