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복음 2: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December 2, 2023. SaturDevo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메시야, 구원자를 천오백여년을 기다려옵니다. 그들의 기다림의 근거는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신 18:15). 이 말씀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구체화되고(민24:17-19, 시2:7-9, 사42:1-4) 메시야를 기다리는 믿음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굳게 자리잡아갑니다. 그러나 안타깝게 그들은 메시야가 정말 오셨을때, 그를 알아 보기를 거부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들이 좋은대로 해석하여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메시야가 이땅에 오셨을때, 그를 알아보고 하나님을 찬양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2:25-38절은 메시야를 기다리며 소망가운데 살고 있던 사람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대강절은 성탄절로 이어지는 4주간의 기간을 말합니다. 기독교인들은 희망, 평화, 사랑, 기쁨에 대한 묵상으로 이 시간을 축하합니다. 희망과 평화와 사랑과 기쁨에 찬 크리스마스 캐롤를 부르며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앞으로 4주동안 저도 이 네가지를 하나씩 공부하며 예수님의 탄생을 묵상하기 원합니다.
시므온과 안나는(눅2:25-38) 경건과 소망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 예수 그리스도 보기를 기다린 사람이었습니다. 누가는 시므온을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사람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시므온과 안나는 평생을 기도하며 예수님 보기를 소망하며 기다린 사람들입니다. 혹자는 그들을 미친사람들이라고 부를지 모르지만, 오늘날 우리는 눈만 들면 바라보고 믿을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 보기를 평생을 기다린 그들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얼마나 축복과 은총을 받은 사람들인지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가의 표현인 “이스라엘의 위로”는 이사야 선지자의 메시야에 대한 예언의 말과 관계됩니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사40:1), “내가 그의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 줄 것이라 그를 인도하며 그와 그를 슬퍼하는 자들에게 위로를 다시 얻게 하리라” (사57:18),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사61:2)등 ‘위로’는 메시야의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메시야의 오심입니다. 메시야는 구원자이고, 신약의 언어로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이 오셔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위로해 주시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누가의 이 소망은 구원(눅2:30)과 죄의 용서(눅1:77), 그리고 잃어던 자의 되찾음(눅 19:10)을 포합니다.
소망은 기다리는 것이고 하나님의 위로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소망은 절망과 어려움을 이기는 씨앗입니다. 기대하는 것이 없으면 기다릴 수 없습니다. 절망과 극한 어려움은 사람을 악하게 합니다. 부정입니다. 그러나 소망이 있는 사람은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인 위로를 기다립니다. 긍정입니다. 기독교는 소망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어려움속에도 반드시 소망을 심어 두십니다.
400여년동안 부재하던 하나님의 말씀이 세례요한을 통하여 오셨을때,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요1:19)하고 묻습니다. 세례요한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요1:20) 라고 대답하며, 메시야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눅3:6)라고 하며 이사야 선지자의 언어(사40:5)를 다시 사용합니다.
모든 육체가 보게될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메시야입니다. 기독교의 소망, 성경의 소망은 상황이 아닙니다. 더 나은 환경이나 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소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구원은 이방인들에게 계시의 빛을 주시며(사도행전 26:17-18), 이미 하나님의 계시를 소유하고 있으며 구원자가 그 백성을 통해 오시게 되는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 됩니다. 그리고 모든 육체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하는 이땅의 “온 백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소망이 되십니다. 절망을 마주한 사람에게도 믿고 붙잡을 수 있는 희망이 되시고, 어두움에 있는 사람에게도 내일을 약속하는 빛이 되시고, 가난한 사람에게도 번영을 기대할 수 있는 비젼이 되십니다 (눅6:20-23).
예수님의 오심은 천오백여년의 기다림, 소망의 결실입니다. 베드로전서 1:3-4은 말합니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로 하여금 새 사람이 되어(고후 5:17) 하늘의 영원한 유업을 잇게하실 산 소망은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산 소망은 하나님이 가져올 미래의 영화를 확신 가운데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소망은 망상입니다. 캐롤 노래소리에 들떠 몸을 흔들어 보지만, 곧 공허만 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정한 산소망(Living Hope)은 앞으로 나가기 위하여 뒤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으로써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시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이것이 복음입니다-를 항상 바라보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