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무엘상 31:4. “이에 사울이 자기의 칼을 뽑아서 그 위에 엎드러지매”
February 17, 2024. SaturDevo
사무엘상 31장은 다윗과 사울의 갈등의 끝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갈등의 끝은 사울의 죽음입니다. 그 갈등의 뿌리는 사울의 교만과 시기와 질투입니다. 사울과 다윗은 같은 이스라엘인이기에 두 영웅이 힘을 합쳤다면, 더 위대한, 더 튼튼한 이스라엘을 만들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사울의 교만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게 했고, 사울의 시기와 질투는 하나님의 심판이 됩니다. 사울의 그 시기와 질투의 원인은 여인들의 노래였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이스라엘 여인들의 노래는 민심이었고, 그 민심을 읽을 줄 알았던 사울은 다윗을 미워하며 낭떨어지기로 떨어집니다. 경쟁자를 만났을때 사람은 두가지의 선택지가 있을 것입니다. 선의의 도전의식으로 자기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사울처럼 시기와 질투로 그를 제거하여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이 존재하지 않게 하려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사울은 결국 시기와 질투라는 독약을 마시고 심리적 고통속에서 죽어가는 쪽을 선택합니다.
그런 죽음은 결코 아름다운 죽음은 될수 없습니다. 그는 지고있는 전투에서 활쏘는 자에게 중상을 입게 됩니다. “그가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그것으로 나를 찌르라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무기를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감히 행하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의 칼을 뽑아서 그 위에 엎드러지매무기를 든 자가 사울이 죽음을 보고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삼상31:4-5). 사울의 죽는 모습입니다.
사울의 죽음은 아비멜렉의 죽음을 연상케합니다. 아비멜렉은 망대위에서 여인이 던진 맷돌에 맞아 두개골이 깨집니다(삿9:53). “아비멜렉이 자기의 무기를 든 청년을 급히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너는 칼을 빼어 나를 죽이라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이르기를 여자가 그를 죽였다 할까 하노라 하니 그 청년이 그를 찌르매 그가 죽은지라”(삿9:54). 아이러니 하게도, 아비멜렉의 마지막 숨은 무기든자의 칼에 찔려 죽었지만 결국은 여인에게 죽었다는 말을 듣지만(삼하11:21), 사울의 마지막 숨은 자살로 끝나지만 후세 사람들은 사울이 길보아 산에서 블레셋과 싸우다 죽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삼하 21:12). 자살은 안했지만 여인에게 죽었다는 불명예를 당하는 아비멜렉과 자살을 하며 할례받지 못한 자의 손에 죽는것을 면하고 전투에서 죽었다는 명예를 받은 사울중 어느것이 더 나은것일까요?
사울은 아름다운 죽음을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죽음 후에도 끔찍한 일을 당합니다. 죽은 이튿날 블레셋사람들은 전리품을 걷으러 왔다가, 사울이 죽은 것을 발견하고 그의 머리를 베어내고 갑옷을 벗겨 블레셋 사람들의 땅 사방에 보냅니다(삼상31:9). 그리고 그의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박히는 일을 당합니다.
사울의 교만과 시기와 질투는 사울의 정신을 마비시킴으로 자성의 기회를 잃게 합니다. 사울에게는 몇번의 자성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사무엘선지자를 통하여, 요나단을 통하여, 그리고 다윗이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포기했을때, 사울은 되돌릴 수 있는 기회를 얻지만 그의 마비된 이성은 하나님앞에 서기를 거부합니다.
자기성찰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돌아보는 기회입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깨닫기 위하여는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워놓고 볼때 확실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를 칭찬하는 어떤 자와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그들이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고후10:12),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고후10:18). 교만과 시기와 질투는 하나님앞에 서기를 거절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