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는 다윗

사무엘하 18:33.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March 2, 2024. SaturDevo

‘다윗과 골리앗’ 또 ‘다윗과 요나단’이 아이들이 좋아하는 단순 구성의 이야기라면, 다윗과 요압, 또는 다윗과 압살롬은 구성이 다소 얽힌 어른들에게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것 입니다. 사무엘하 18장은 아들과 아버지의 왕권 다툼의 불행한 내전입니다.

성경에서 다윗의 아들 압살롬의 등장은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의 아들”(삼하 3:3)이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13장에서 압살롬은 그의 누이 다말로 인해, 이복형제 암논을 죽이는 일을, 이년 동안 마음에 품고 있다가 모의하고 실행합니다. 압살롬은 그 길로 도망쳐 자기 외가집으로 가서 삼년을 살게 됩니다. 삼년이 지나자 다윗의 마음이 조금 누그러들며, 죽은 아들은 죽은 아들이고, 산 아들을 슬그머니 그리워하게 되고, 이를 눈치챈 요압의 괴계로 압살롬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돌아온 압살롬은 먼저 회개를 했어야 했지만 판세를 읽는데 머리를 쓴 그는 요압을 압박해 아버지와 화해를 합니다(삼하 14장). 그리고는 대권를 잡기위해 위선을 베풀어 백성들의 마음을 흔들어 자기편으로 만들고 쿠데타로 아버지 다윗을 예루살렘에서 쫓아내었습니다(삼하15). 압살롬은 자신이 아버지의 왕권을 자신이 차지했다는 것을 분명히 보이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볼수 있는 옥상에서 아버지 다윗의 첩들과 동침까지 합니다(삼상16:22). 그리고 압살롬은 아버지를 죽여야 모든 백성이 자신에게 돌아오고, 자신의 왕권이 견고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아버지를 죽이러 이스라엘의 온 군대를 이끌고 다윗을 뒤를 쫓습니다.

사무엘하 18장은 드디어 아들의 군대와 아버지의 군대가 에브라임 수풀에서 전투를 하게 됩니다. 다윗은 자신이 예루살렘을 도망나올때 따라나온 얼마 안되는 군대를 전장으로 내 보내며, 군지휘관들 (요압과, 요압의 형제 아비새와 가드사람 잇대) 에게 압살롬를 너그러히 대하라고 명령합니다. 이것을 성경은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모든 군지휘관에게 명령할 때에 백성들이 다 들으니라”(삼하18:5)이라고 적고있습니다. 다윗은 형제을 죽인 살인자, 방화범, 백성을 빼앗은 사기꾼, 예루살렘성을 빼앗은 반역자, 그리고 아버지인 자신까지 죽이려고 하는 패륜아 압살롬을 위하여, 왕인 자신을 위혀여 목숨까지 걸고 싸우러 나가는 군대에게 아들을 너그러이대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다행히 전투는 아버지인 다윗의 군대가 승기를 잡게 됩니다. 그리고 압살롬도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치니라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에 압살롬의 머리가 그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그가 공중과 그 땅 사이에 달리고 그가 탔던 노새는 그 아래로 빠져나”(삼하 18:9)갑니다. 그리고 나무에 매달린 압살롬를 요압은 다윗의 명령을 무시하고 죽이므로 전투는 끝나고, 요압은 나팔을 불게하여 군대를 불러들임으로 이런 어이없는 내전으로 인한 더이상의 죽음이 없게 합니다. 그러나 전투에 이긴 소식과 압살롬이 죽은 소식이 다윗에게 전해지자 다윗은 “압살롬을 위하여 울며 슬퍼”(삼하 19:1)합니다.

이스라엘의 존폐와, 자신과 자신을 따르는 신하들의 생사가 달린 싸움에서, 패륜아들을 너그러히 대해달라고 명령하는 다윗, 그 전투에서 이겼는데 목숨걸고 싸운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대신, 무리를 일으켰던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다윗, 이 다윗을 어떻게 해석하여야 하겠습니까? 요압은 이렇게 불평합니다.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과 비빈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부하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지휘관들과 부하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 (삼하 19:5-6). 지당한 불평이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요압이 지극히 현실주의자였음에 반하여 다윗은 하나님만 바라보며, 아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으며, 그리스도를 표상하는 선지자였습니다.

이 이야기에 대하여 성경은 욧점을 정리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하여 아버지의 마음을 엿볼수 있습니다. 육신의 아버지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요압같은 현실주의자는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심까지 감수하시며, 용서할 없는 죄인들을 구원하실 길을 열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세워진 우리의 죄가 압살롬의 죄보다 결코 가볍다고 주장하기 쉽지 않을것입니다. 다윗은 그런 압살롬과 그가 아들이기에 자신이 멸망할 지라도 다시 화해할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다윗이 그 기회를 잃었을때 어찌 슬프지 않았겠습니까? 그런 기회를 잘라버린 요압을 다윗은 용서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 주시면, 압살롬보다 더한 죄인일 지라도 하나님의 아들들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다가 그 죄인이 끝내 돌아오지 않고 영벌로 떨어지면 다윗처럼 우십니다. 압살롬보다 더한 죄인일지라도 그가 주께 돌아올 길을 막는 사람은 요압이 됩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마 18:6). 압살롬보다 더한 죄인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갈 수 있고, 돌아가야 합니다. 그 누구도 누구를 정죄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화해할 기회를 뺏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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