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가복음 2: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March 9, 2024. SaturDevo
RTL 프로그램에서 알게된 중국분과 같이 성경을 읽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 분과 마가복음 2:23-28을 같이 읽고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이 부분은 인본주의 사상을 얘기하고 있는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들으며 성경은 인본주의와도 맥을 같이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사람을 사랑하시고 귀히 여기십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율법은 사람을 위하시고, 살리시고 존귀케하시기 위하여 주신것이지, 사람을 속박하고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 아님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됩니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밀밭 사이로 지나가십니다. 그러는 동안 제자들이 밀 이삭을 따서 부벼 알곡을 먹습니다. 이것을 본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따지고, 예수님이 대답하시는 장면입니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막2:24).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이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에 하지 못할일은 출애굽기 20:9, “일곱째 날은…안식일인즉…아무 일도 하지 말라”라는 말씀일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이삭을 자르는”일을 언급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예수님은 “안식일”과 전혀 상관없는 다윗의 얘기를 말씀하시며 촛점을 “하지 못할 일”에 맞추십니다.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막2:25-26). 이 일은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도망가며, 아히멜렉 제사장에게 들러 배고픔을 해결한 일을 말합니다(삼상 21:1-6).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다윗이 진설병을 먹어서 정당화 된것이 아니라 신명기 23:25, “네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때에는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되느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밭에 낫을 대지는 말지니라” 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모세의 계명을 재 해석하시는 예수님을 생각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율법, 계명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계명을 주신 의도를 상고하지 않고, 무조건 그 계명을 지키려고 하는 행위는 바리새인같은 위선으로 빠져들수 있음을 경계합니다. 흠 잡기를 주특기로 하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을 꼬투리잡지 않는 것이 이상합니다. 또 아히멜렉을 아비아달로 얘기하는데도 아무말도 안합니다.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오늘날 성경을 읽는 우리는 한번 쯤 생각해 보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본론으로 돌아갑니다.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막2:27).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십계명 중에 하나인 ‘안식일’보다 ‘사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안식일을 주신 의도를 보고 계시지만, 바리새인들은 생각없이 그 텍스트에만 매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결론입니다.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2:28). 인자(the son of man)는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과 대조되는 또다른 예수님의 별칭입니다. 예수님은 온전한 하나님이시며, 온전한 사람이신 위격적 결합의 존재이십니다. 그래서 두 칭호 모두 적법합니다. 인자이신 예수님은 예수님의 정체성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첫째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려 오신 겸손하신 하나님의 종이심을 의미합니다. 둘째는 백퍼센트 인간이시기에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고통받는 종이심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셋째는 하나님의 왕국을 이땅에 세우시기 위하여 다시 오실 영광의 왕이시며 재판장이심을 의미합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고 살리신 우리의 주이십니다. 그 예수님을 우리는 세상의 무엇보다 먼저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신본주의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고 위하는 진정한 인본주의와 상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