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복음 12:16.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March 23, 2024. SaturDevo
요한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은 최소한 네번 이상을 예루살렘에 가신것으로 보입니다. 한번은 초막절에 (요7:2, 10), 또한번은 수전절에(요10:22), 그리고 두번은 유월절에(요 2:13, 12:12) 예루살렘 성전에 가십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환호를 받으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신 사건은 12장에만 나옵니다. 이 사건은 다른 세 복음서에도 기록되어 있고, 이것을 일컬어 The Triumphal Entry (승리의 입성)이라고 부릅니다. 다른 세 복음서(공관복음서)에서는 이후 유월절 만찬까지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 그리고 유대인들(제사장들, 바리새인, 사두개인 율법사 서기관들)과의 갈등을 그리고 있는반면, 요한 복음서에서는 그들을 뭉뚱그려 믿지 않는자들로 치부해 버리고, 오히려 제자들과의 관계를 깊이 일궈가는 모습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의 승리의 입성은 크게 세 관점에서 바라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복음입니다.
빈틈없는 하나님을 보며 다시한번 놀랍니다. Scotty Smith목사님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 오시는 예수님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홍보하실 줄 아는 홍보회사이시며, 자신의 해설자이시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오시며 나귀를 타기로 하신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자신이 누구이신지를 정확하고 분명하게 나타내시는 홍보 이벤트였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을 로마의 압제에서 구원하여 주실 구원자, 메시야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의 한 구절이 사도요한이 12:15에 인용하여 적고 있는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입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슥9:9).
걸어 들어오시지 않고 동물을 타고 들어오시므로 승리자이며 왕이심을 공표하고 계십니다. 삼년동안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것을 보고 들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약속된 메시야이심을 확신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호산나(Save us/우리를 구원하소서)를 외칩니다. 그리고 바로 예수님을 왕으로 받듭니다. 그러나 왜 백마가 아니라 나귀였는지는 숙고하지 않은듯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정치적 왕이 아니라, 공의의 왕(슥9:9), 평강의 왕(열상1:38)이라는 것과, 군사적 정복자가 아니라 죽음과 고난과 질병의 정복자라는 것을 나귀를 타심으로 은연중에 나타내십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입성후, 헬라인들이 뵙기를 원할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요12:23). ‘아직, 아직’(요2:4, 7:6) 하시던 예수님은 때가 되었음을 알리십니다. 예수님은 주위 사람들에게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계획을 진행시키시고, 빈틈없이 이루십니다.
그러나 사람의 부족함은 이 사건에서도 여지 없이 나타납니다. 요한은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요12:16)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백성들만 예수님을 잘못 이해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삼년동안 따라다니며 배운 제자들도 예수님을 잘못 해석합니다. 로마서 3:10-11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 라고 적고 있습니다. 깨닫는다라는 것을 ESV는 “understand”라는 말로 번역하고 있씁니다. 예수님이 왜 나귀를 타셨는지, 영광을 얻을 때가 무엇인지 구약의 예언들이 예수님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삼년을 밤낮없이 배우고도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이 땅위에 죄인아닌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로마서의 말씀을 부인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라도 예수님을 깨달은 것은 축복입니다. 아득히 먼 옛날, 창세기3장의 하나님의 약속이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으로 때가되어 성취되기 시작되었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5). 사람이 죄인되게 한 그 원수를 물리치고 다시 죄인되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릴수 있게 된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삶과 죽음, 부활을 통해 죄인들을 어떻게 자신과 화해시키시는지에 대한 좋은 소식입니다. 복음은 또한 모든 거짓과 욕심과 질병과 악인 이 세상의 통치자인 사탄을 이기신 예수의 승리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인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이땅에 오신 예수님은 상한 발꿈치로 뱀의 머리를 밟으셔서 상하게 하고 이기시어 복음 약속을 성취하신것입니다.
머리를 상한 사탄의 패배는 누구나 알수 있습니다. 아직 숨이 끊어지진 않았다 할지라도 종말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의 시대, 은혜의 시대를 Already, Not Yet(이미, 그러나 아직)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헬라인이 예수님을 찾았다는 말은 예수님의 승리와 통치가 유대 예루살렘을 넘어 온 세계에 까지 미친다는 것을 예시하는 것입니다(요12:21). 그래서 이 말씀이 복음이고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