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복음 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사람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꼭 죽으셔야만 했을까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고 하는 성금요일만 되면 경외와 감사와 회한과 찬양과 함께 머리속을 스쳐가는 질문입니다. 전지 전능하시다고 하는 하나님에게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요? 구글에게 물어봐도 AI에게 물어봐도 시원한 대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목요일날 밤 예수님은 겟세마니에서 기도합니다.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막14:36). 이 말씀은 ‘이 세상을 구원하는 방법이 내가 꼭 죽어야 하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까?’ 하는 절규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님의 이런 절규에도 불구하고 그 잔을 옮기지 아니하십니다. 예수님이 죽는 방법이 하나님의 속성에 모순되지 않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또 다른 의문은 예수님을 죽음에 까지 이르게 하며, 사람을 구원해야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되기 위한 조건에 사람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예배를 받아야 하나님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송아지가 없어도 사람은 사람인것 처럼, 러시아 노래를 듣지 않아도 사람은 사람인것 처럼, 사람이 없어도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예배를 받지 않아도 하나님은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이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죽으신 이유를 성경은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요 3:16),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계명을 어긴 죄지은 사람을 사랑하시었고 사랑하시기로 결심하시고, 구원하실 계획을 세우시고 실천하십니다. 그리고 그 구원하실 방법은 하나님의 그 많은 거룩하고 선하고 공정하고, 공평한 속성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어야 했으므로 하나님께서 하실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 대속을 택하게 됩니다.
대속(Atonement)은 사람이시며 하나님이시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모든 죄지은 사람이 가야만 하는 죽음을 당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신 원래 죄인 이었던 우리는 죄없는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원인이고 결과는 예수님의 죽음이 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큰 은혜입니다.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수 있는 은혜를 받게 됩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통한 대속적 구속에 인간이 끼어들 여지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결정에 의해하나님께서 하신일입니다. 그리고 그 온전한 혜택은 인간이 받습니다. 은혜입니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