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복음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March 31, 2024. SaturDevo
부활절은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 하신 사건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기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시었습니다. 왜 다시 살아 나실것을 그냥 죽지 말지 왜 죽으셨을까요? 그 대답이 요한복음 12:24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예수님은 많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하여 죽으시고, 첫 열매로 살아 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논리를 자연의 이치로 설명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이 중요한 원리를 신학적 논리로 설명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그냥 죽음이 아니라 ‘대속적 죽음’이라고 합니다. 대속적 죽음이라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대신 죽은 죽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죄를 대신 해서 죽은 죽음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봅시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을 (영원히)살리기 위하여 대신 죽을 수 있습니까?’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대신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죽음으로 자식이 조금 더 오래 살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 자식도 결국은 죽습니다. 투사들이 동지를 위하여 대신 죽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들로 인해 살아 남은 동지도 결국은 죽습니다. 히브리서 9:27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라고 적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창세기 3장의 아담과 하와의 죄로 인한 것입니다. 그들이 죄를 짓지 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타락으로 모든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도 어떤 사람을 위하여 대신 죽어 어떤 사람을 영원히 살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위하여 고통받으시고 대신 죽으심으로 영생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고 합니다. 이것을 로마서 5:10은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예수가 어떤 분이기에 그를 믿는 자들을 위하여 대신 죽으셔서 그들을 영원히 살릴 수 있을까요?
성경은 예수님을 온전한 사람이시고 또한 온전한 하나님이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의 위격적 결합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에 위격적 결합이란 말은 나오지 않지만 성경의 내용이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5장에는 예수님이 중풍병자의 죄를 사하시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죄를 사하시는 예수님을 보며, 바리새인들은 속으로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눅5:21). 그러자 예수님은 예수님이 죄를 사할 능력이 있음을 그들 앞에서 증명합니다 (눅5:24).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사람인 것은 모두가 압니다. 우리와 똑 같은 사람이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4:15)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죄 없으신 사람이십니다.
로마서 6:23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기에 모두가 자기 죄로 인하여 죽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죽어줄 목숨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 없으신 사람이시기에 예수님에게 사망은 없습니다. 죽지 않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짓기 전에는 죽음을 생각지도 않았던 것처럼, 죄가 없으신 예수님도 마찬가지 입니다. 죽을 필요가 없으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십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죄 있는 사람을 위해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대속의 죽음입니다. 죽지 않아도 되는 예수님이 믿는자를 위해 죽으셨기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죽지 않아도 되게 된것입니다. 영생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 대신 죽은 예수님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은 어떻게 죽음에서 살아나셨을까요? 예수님이 단순히 하나님이기에 살아나신 것일까요? 하나님은 전능하시기에 무엇이든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비합리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말씀하고 계신 공정 공평하신 자신의 속성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사도행전 2:24는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라고 합니다. 왜 예수님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을까요?
예수님은 죄가 없는 사람이셨지만 다른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고 돌아가십니다. 누구든지 죄가 있는 사람은 “반드시 죽으리라” (창2:17)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자신의 죄는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셨기에 다른 사람들 대신 죽었습니다. 죽음은 예수님이 대신 지신 다른 사람의 죄 때문에 죽게는 하였지만, 원래 죄 없으신 분이 시기 때문에 죽음은 예수님을 죽음에 잡아 둘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삼일 만에 다시 살아 나실수 뿐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었습니다.
이제 이 원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됩니다. 히브리서 9:26은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라고 적고 있습니다. 요한 일서 4:9-10도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롬10:13),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5).
예수님은 그를 믿는 사람들의 죄를 지고 죽으십니다. (벧전 3:18, 요일1:9).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죄가 없어집니다. 죄가 없기 때문에 죽지 않아도 됩니다. 요한복음 14:3은 이런 약속을 주고있습니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이 이땅에 오시어 죽음을 이기시고 영생의 길을 열어주시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기 전의 상태로 되돌려 놓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은혜의 시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오시기까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사람은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까지 우리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의 죽음은 믿지 않는 사람의 죽음과 같지 않습니다. 죽음은 우리를 잡아둘수 없습니다. 우리는 죄가 없는 사람이기에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이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게 되는 모든 믿는 자는 첫 열매에 이어지는 열매들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