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요나

열왕기하 14:2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April 27, 2024. SaturDevo

여로보암은 이스라엘의 최 전성기를 이룬 왕입니다. 이스라엘왕들 중에 여로보암이라는 이름의 왕이 두명 나오는데, 먼저 나오는 여로보암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으로 솔로몬 사후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으로 부터 이스라엘을 쪼깨어 가진 북왕국 이스라엘의 시조가 됩니다(열상13:20). 그리고 두번째 나오는 여로보암은 첫번째 여로보암과 핏줄로는 아무상관 없는 인물로, 오므리왕조(오므리, 아합, 아하시아, 요람)를 멸하고 새 이스라엘 왕조를 연 예후의 후손입니다. 그 둘을 구별하기 위하여 첫번째 여로보암을 여로보암 1세로 부르고, 두번째 나오는 예후의 증손자 여로보암을 여로보암 2세로 부릅니다. 그리고 이 여로보아2세(BC782-753)가 이스라엘의 최 전성기를 누린 왕입니다.

그러나 그가 전성기를 누리기 전에 이스라엘은 고통을 받습니다. 열왕기하 13:3-4은 그의 할아버지 여호아하스 왕 때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노하사 아람 왕 하사엘의 손과 그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 넘기셨더니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므로” 어려움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여호와 앞에 기도하므로 여호와 께서 긍휼히 여기서서 이스라엘을 구원자를 보내 구해 주십니다. 그 구원자가, 앗시리아왕 아다드 니라리였습니다. 그가 아람왕과 싸운것이 이스라엘이 아람의 학대로 부터 벗어나는 기회가 된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입니다(열하13:23). 여로보암 2세의 아버지, 여호아스(요아스라고도 함) 왕은 그 기회를 이용하여 나라를 부흥시켜 나갑니다(열하13:25). 여호아스는 유다왕 아마샤와 좋은 관계를 구축합니다. 그래서 그 둘은 사돈관계까지 맺습니다. 그리고 유다왕이 에돔과 싸울때, 이스라엘에게 도움을 청하고, 이스라엘은 기꺼히 승락하고 군대를 출동시키지만, 하나님은 이것을 아마샤에게 허락하지 않습니다. 아마샤가 출동한 이스라엘 군대를 돌려 보내는 사건의 갈등으로 둘의 사이는 금이 가기 시작하고, 돌아가던 이스라엘 병사들은 유다 촌락을 약탈합니다. 그러자 혼자 힘으로 에돔을 이긴 아마샤는 자신감에 충만하여 여호아스에게 싸움을 겁니다(열상 14:9-10). 그러나 아마샤는 포로로 잡혀 이스라엘에서 여호아스가 죽을때까지 잡혀있게 됩니다. 여호아스의 아들 여로보암 2세도 결코 여호와 앞에서 선한 왕은 아니었지만(열하14:24),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그에게 이스라엘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도록 하십니다. 그는 땅을 넓히는데, 다윗과 솔로몬 당시의 경계까지 이스라엘의 땅을 넓혀 나갑니다. 하나님은 이 악한 왕, 여로보암2세의 영화를 요나의 입의 통해 알게하십니다(열하 14:25). 성경은 이것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고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음을 보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으므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 (열하 14:26-27). 요나는 악한 왕의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구원받는지를 목도한 선지자 였습니다.

그 요나에게 하나님은 일어나 니느웨에가서 그들의 죄악을 선포하라고 하십니다(요1:2). 그러나 그는 들은 체도 않고, 다시스로 도망가다가 여호와도 모르며 여호와를 두려워 하는 이방인들의 손에 들려 여호와를 알면서도 여호와를 거부하는 자자 되어 바다속에 던져지는 참변을 격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말씀을 거부한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욘4:1-2).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을 지내고서야 다시 여호와의 말씀대로,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됩니다. 당시 앗시리아는 약하고 고통받는 상태였습니다. 아람과 또 다른 주변국들과 전쟁으로 약해졌기에 강대국으로써 그전 만큼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또한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였으며 이스라엘에게는 번영을 누리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요나의 선포에 니느웨사람들은 회개하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욘3:10)십니다. 그러자 요나는 성을 냅니다.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욘4:2-3).

하나님의 질문입니다.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이 물음은 요나를 생각해 보게 되고, 우리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요나는 자기와 남을 분명하게 구분합니다. 요나에게 자기는 자신이고, 이방인은 남입니다. 요나에게 이스라엘은 자기이고, 니느웨는 남입니다. 요나는 풍랑속의 배에서 아우성치는 선원들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지만, 물고기뱃속에서 자신을 위해서는 간절히 기도합니다(욘 2:3). 이스라엘을 위해서는 여로보암이 악한 왕일 지라도 여호와의 말씀을 신실히 전하지만, 니느웨를 위해서는 그들이 잘될것을 시기하여 죽음을 택하겠다고 합니다. 자기것을 주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 것을 주는 것을 그토록 싫어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스라엘이었고, 하나님을 믿는 요나였습니다. 요나가 이스라엘이고, 이스라엘이 요나입니다. 요나를 생각하며 우리를 생각해 보게합니다.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에서 나셨지만, 이스라엘이 독점할수도, 해서도 안되는 분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구원받는 복음은 믿는 사람들에게 주어졌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도 전해야 할 좋은 소식입니다. 믿는 사람은 요나 같지 않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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