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고집스런 구원 의지

마태복음 12:38-39.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June 1, 2024. SaturDevo

예수님의 사역이 점점 힘을 얻어가며 번창하여 가자 의심하고 시기하며 지켜보던 서기관과 바리새인중에 몇 사람이 “힐난하며, 시험하”기 위하여 예수님께 부탁하는 말입니다. 마가복음 8:11은 그들이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한다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하며 ‘요나의 표적을 보일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얼뜻 보기에 요나가 대단한 사람이 되는 듯한 느낌이 들게합니다. 더구나 어떤 사람들은 요나를 예수님을 예표한 사람으로 말하기도 하여, 그를 중요한 사람으로 생각들게 하기도 합니다. 물론 요나는 예수님이 인용할 만큼 중요한 사건에 관계된 인물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12:41절의 말씀,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라는 말씀은 요나를 예수님 버금가는 사람쯤으로 간주한는듯 합니다. 하늘로 부터 오는 표적을 구할때, 예수님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게 오직 보여줄수 있는 것이, 요나의 표적이라니…? 

요나서를 읽어보며, 요나의 표적과, 요나의 인격은 구별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요나의 행적은 간단합니다. 요나는 선지자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배를 타고 다시스를 향하여 도망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낸 풍랑으로 인해 사공들에게 바다에 던져지게 되고, 큰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밤낮을 지내며, 기도함으로 물고기가 그를 토해내 살아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의 말씀하시므로 그 말씀대로 니누웨에 가서 말씀을 전합니다. 그 말씀을 듣고 니누웨는 회개하고, 하나님은 그들의 회개를 보고 그들을 구원해 주지만, 요나는 그것이 맘에 들지 않아 하나님께 항의합니다. 그 항의는 고집스럽습니다. 그 고집에 하나님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요4:10-11)하는 질문으로 끝납니다.

이 이야기에는 회개, 선교, 하나님의 주권, 긍휼 등 여러가지 주제가 있을 수 있고 교훈이 담겨 있지만, 요나의 인격은 칭찬할 만한 것이 단 한가지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있다면 요나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한 바른 지식은 갖고 있다는 정도입니다. 그 이야기가 끝나고 그가 진정으로 회개했는지도 의심입니다. 오히려 안했다고 확신이 드는 상황은 이후 얼마되지 않아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멸망했다는 사실입니다. 요나와, 요나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이 그 완고함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생각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한 ‘요나의 표적’이란 말이 결코 요나의 사람됨을 칭찬한 것은 아님이 분명합니다.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라는 말씀을 요나서와 비교해서 생각해 본다면, ‘요나가 밤낮 사흘도안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은 그가 원했던 일이 아니고,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도망간 죄로 요나에게 강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요나의 전도’도 요나가 원한 일이 아니라, 간신히 물고기 뱃속에서 살아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거절할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선택의 여지 없이 실행한 일에 불과 합니다. ‘요나의 표적’이란 말 보다는 ‘요나를 통하여 보인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와 긍휼의 표적’이라는 말이 더 정확하지만, 이 말이 너무 길어, 간단히 ‘요나의 표적’이란 말을 쓰신 것이라고 믿어집니다.

사실 요나의 인성은 제로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도망간 선지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대드는 선지자입니다. 그런 요나에게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긍휼, 은혜는 끝이 없습니다. 바다에 던져진 요나를 큰 물고기 뱃속에 담습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궁지에 몰려서 하는 기도에도 하나님은 귀를 기울이시고 그를 육지에 토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하셨듯, 요나에게 똑 같은 말씀을 주십니다. 더는 도망하거나 거부할수 없었던 요나는 니누웨로 가서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회개하고 악에서 돌아섰을때,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십니다. 요나는 이를 심히 싫어하여 성내며 하나님께 대듭니다. “나를 죽이십시요.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겠습니다”라며 대듭니다. 하나님은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요나의 이 성질과 하나님의 질문은 박넝쿨 사건을 통하여 또 한번 거듭됩니다. 요나는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며 시기와 질투로 꽁꽁 뭉쳐진 인간입니다.

요나는 이스라엘을 대표하며, 죄성에 물든 인간을 비유적으로 나타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인내와 긍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 요나서는 그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도망가는 요나를 끝내 잡아와 전도자로 만들듭니다. 음란하고 악한 세대로 대표되는 니누웨를 끝내 구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을 통하여 이 악한 세상을 구원하실 하나님의 단호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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