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왕기상 19:3.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
August 10, 2024. SaturDevo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열상19:1-3)
사실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위대한 승리자’ 엘리야가 도망친 이유는 이세벨의 위협적인 전갈입니다. 그러나 선뜻 이해가 안가는 이유는 이 이야기가 마치 웃기는 한국 드라마같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작가들이 이야기를 배배 꼬다가, 다시 풀기는 풀어야 겠는데 스릴있고 극적이고 감동적으로 풀 방법이 꽉 막혀 버렸을때, 유치한 방법으로 풀어내는 것처럼 어설프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모든 행동이 심리학적으로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우리는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엘리야도 그런 특별한 사람중에 하나로 친다면, 무슨 행동을 하든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를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수퍼 능력을 체험한 선지자로써, 그래서 그 열심으로 사악한 왕 아합을 당당히 대면하고, 진정한 하나님을 많은 백성 앞에서 증명하며 바알의 선지자 450인까지 처형한 위대한 믿음의 용사가 그까진 왕비의 협박 전갈에 혼비백산하여 도망갔다는 것은 만화같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엘리야를 이세벨의 협박에 정신못 차리고 도망가게 한 진정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는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고, 또 하나는 불완전한 인간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명철입니다.
엘리야는 진정 믿음의 사람이었고 용기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불완전한 타락한 인간 이상은 아니었습니다. 열왕기상 17:1부터 그는 용기있는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이름없는 한 여호와의 선지자로 왕의 길을 가로 막으며 바알신을 따르는 왕에게 도전합니다.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믿음이 있어야 할 수 있고, 용기가 있어야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를 다시 아합왕 앞에 내 보내기 위하여 삼년반동안 훈련시킵니다. 그후 그는 다시 아합왕 앞에 나타나, 불을 내려 제물을 태우는 시합을 겁니다. 그래서 모든 백성 앞에서 진정한 신을 가리자는 것이었습니다.
그자리에서 엘리야는 백성들을 향해 말합니다.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 (열상 18:22). 이 말에 숨어있는 뜻이 의미 심장합니다. 엘리야는 온 이스라엘 땅에 여호와의 선지자는 자기 혼자이고, 그 외의 모든 사람이 바알을 따른 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골리앗 앞에 나서는 다윗같은 의연함이 보이지만, 나중에 하나님앞에서 이스라엘의 상황을 보고하는 내용(열상 19:10, 14)과 같이 보면,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불안감이 엿보이는 장면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 6:5)의 말씀을 온전히 따르지 못하는 엘리야입니다. 이 불안감은 이세벨의 위협적인 전갈을 받았을때, 갑자기 솟아나와 그를 두려움에 감싸이게 하고 허둥대며 순식간에 200km를 달려 브엘세바로 도망치게 만듭니다.
또 하나는 모든 상황을 공시적으로 보시는 하나님은 엘리야가 도망치는 것을 허락하시고, 그 도망친 엘리야를 신실히 대하시어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막 1:2-3)의 선지자로 보내십니다(열상 19:15-18). 하나님은 엘리야를 왔던길로 다시 돌려 보내며, 하사엘과 예후를 기름부어 왕으로 만들고, 엘리야를 기름부어 그를 대신할 선지자로 만들어 아합집안을 심판하고 숨겨 놓으신 칠천인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다시 찾으시는 준비자로 삼으심니다. 하나님의 명철 하심입니다. 실패한 모세를 통하여 히브리백성을 애굽노예에서 구해 내신 것처럼,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한 베드로를 통하여 유럽을 복음화 시키는 선구자가 되게 하신 것 처럼, 도망친 엘리야를 사용하시어, 주의 길을 예비하는 광야의 소리가 되게 하시었습니다.
군사를 잘 쓰는 장군에게는 버릴 군졸이 없고, 글 잘쓰는 사람에게는 버릴 글자가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모든 믿는 사람은 천국을 세워 나가시는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인줄 의심할 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