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을 대신하여 받는 세례

고린도전서 15:29.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

August 24, 2024. SaturDevo

이 구절은 여러가지 다양한 해석이 회자되는 구절 중에 하나입니다. “죽은 자를 위하여” 또는 “죽은 자를 대신하여”라는 의미인데, 죽은자를 위하여 세례를 주거나 받는 것은 기독교의 믿음과 합치되지 않을 뿐아니라, 성경의 다른 곳에도 이 이론을 뒷받침하는 말씀은 없습니다. 이단 종파의 하나인 몰몬교는 이 구절에 의거하여, 죽은 사람을 위하여 대신 그 친척이나 친구가 세례를 받는 일을 합니다. 그러나 정통 기독교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의식입니다. 그런데 왜, 바울은 이 말을 이곳에서 쓰고 있을까하는 것을 의아해 하며, 바른 해석일 것이라고 생각되는 여러가지 의견이 나와 있습니다.

먼저 이 구절이 들어있는 단락의 내용(Context)를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구절은 바울이 ‘부활이 분명이 있다’라는 것을 주장하는 가운데 나온 구절입니다. 세례를 어떻게 받아야 한다든가, 세례가 무엇이라든가 하는 주장이 아니라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부활이 있다는 것을 설득하는 가운데, 한 예로 들어 ‘죽은 자를 대신하여 받는 세례’를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구절의 해석중 그럴듯한 세가지는 이런 해석입니다.

  1. 부활이 분명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하여 바울은 당시 행해지던 풍습을 언급하고 있다는 해석입니다. 즉 바울의 욧점은 죽은자를 대신해서 받는 세례가 아니라, 죽은 사람이 부활이 확실하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당시 오늘날 몰몬교인들 처럼, 죽은 사람을 위하여 어떤 사람이 대신 세례를 받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울은 그들을 예로 들어 부활이 없다면, 왜 그들이 그런일을 행하겠느냐고 묻고 있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2. 바울이 말하는 ‘죽은자 (the dead)’는 죽은 사람이 아니라, 영적으로 죽은 죄인이라는 의미라는 해석입니다. 실제로 우리의 몸은 아직 살아있는 듯 하지만, 하나님으로 부터 분리된, 죽은 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죽은 몸을 대신하여 세례를 받아, 그 몸은 죽을 것이나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따라 새 몸을 입고 부활한다는 소망을 29절 처럼 표현했다라는 주장입니다.
  3. 또 다른 견해는 죽은자의 부활이 없다면, 죽어가는 또는 죽은 육체를 위한 세례는 쓸모없는 헛일이라고 바울이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바울이 이 구절을 통하여 말하고 있는 것은, 부활이 분명히 있다는 주장이지, 어떤 세례가 합당한 세례인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어떤 텍스트는 아직도 무엇이 정확한 의미인지 분명히 알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 3:16도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석하기 어려운 구절은 최선을 다하여 이해 하려고 노력해 보지만,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할때, 우리는 기다리는 지혜도 필요하다고 믿어 집니다.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서 당장 성경의 모든 것을 이 말씀은 이런 말이다라고 단정하여 해석을 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구원받게 하시기 위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구원 받기에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 부분적으로 아직도 분명한 의미를 모르는 것은 그냥 그런대로 받아들이면서 기다리며 공부하면 됩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면, 또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우리는 분명히 그 뜻을 이해하게 될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전 13:12). 바울의 충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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