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예수님은, 정말 12월 25일에 태어 나셨나?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the word became flesh and dwelt among us,) (ESV))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December 20, 2024. SaturDevo

12월 25일은 예수님의 태어나신 날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알고 있고, 그 사실을 축하하는 것이 크리스마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의 탄생한 사실에 대하여는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만, 날짜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태어났다는 사실은 중요하지만, 몇일 날 태어났느냐는 문제 삼고 있지 않은 것 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에 대하여는 주측과 주장이 있을 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크리스마가 고대 이방인들이 일년 중 밤이 제일 긴 동지를  기억하며 축제로 지켜왔던 시기와 일치한다는 이유로 이방의 축제를 기독교가 예수님의 태어나신 크리스마스로 대치하며 기독교의 성일로 만들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연히도, 이방인들이 즐겼던 이유가 일년중 밤이 제일 긴 동지를 지나며 점점 해가 길어지는 날들을 기다리며 소망을 가졌다는 것과, 예수님이 구원의 소망의 빛으로 오셨다는 의미가 일치하며 그럴듯한 논리와 주장으로 받아 들여 지기도 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떠오르는 질문 하나는, ‘그렇다면 왜 예수님의 나신날을 동지 (12/21 or 22)로 하지 않고 25일로 했느냐?’ 는 것입니다.

2세기 말, 3세기초에 살았던 섹스투스 율리우스 아프리카누스(Sextus Julius Africanus, )는 예루살렘에 살았던 역사학자입니다. 그는 “세계의 역사(a History of the World)”라는 글을 남겼는데, 이 자료에서 그는 “예수님의 수태일이 5501년(히브리역) 춘분인 3월 21일” 이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한가지 말씀드리자면, 내가 아는 동료중에 한 분으로 부터 자신이 어렸을때 자신의 할머니로 부터 할머니가 노예로 살던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내가 이 이야기를 들은 것은 미국 흑인들에게도 ‘노예’라는 말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시대에 들은 오래된 이야기를 ‘노예’의 삶을 격었던 사람에게서 그의 손녀를 통하여 생생하게 전해들은 이야기 였다는 것입니다. 2세기 말을 살았던 아프리카누스라면 할머니나 아버지를 통하여 직접적이고 생생한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던 사람인 동시에 여러가지 문헌을 연구한 역사학자라는 사실입니다. 그의 주장을 믿을 수 있는 이유가 됩니다.

그의 기록에 의거하여 9년 뒤인 336년, 로마교회는 3월 21일 부터 온전한 사람의 수태기일인 280일 후인12월 25일에 첫 번째 크리스마스를 지키게 됩니다. 그리고 9년 뒤에 (345년) 교황 율리우스 1세는 12월 25일을 예수님이 나신 크리스마스로 공표하게 됩니다. 따라서, 크리스마스는 이방 축제를 차도용한 성일이 아니라, 초기 역사학자의 사실과 연구에 근거한 축제 성일인 것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중요성을 두지 않고 있는 예수님이 태어나신 크리스마스도 매년 우리는 예수님의 태어나심을 기억하며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의미에서 귀중한 날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면 성경이 예수님의 태어나심에 중요한 의미을 두고 있는 내용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태어나심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성경은 구절은 마태복음 1-2장과 누가 복음1-2장, 그리고 요한복음 1장입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태어나심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고 요한 복음은 그 의미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태와 누가는 마리아와 다윗의 자손 요셉의 관계, 성령으로 수태한 마리아, 나사렛을 살던 마리아가 어떻게 베들레헴에 오게 되었으며 그곳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낮은 자로써 태어나신 예수님과 그의 태어남과 관련된 목동들과 동방박사들에게 일어났던 기이한 사건들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 복음 1장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사람으로 우리 가운데 태어나심의 의미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태초에”라는 말은 창세기를 생각나게 하고,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의 시간까지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말씀”은 그때 부터 하나님과 함께 하신 하나님 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창조 행위의 중요한 행위자였음을 언급합니다. 그리고 요한 복음 1장 14절은 이 “말씀”이 독생자 예수님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예수님은 사람이시다 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역시 14절은 그 독생자 예수님이 우리가운데 거하신다라고 하며, 사람으로써의 예수님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리아의 몸을 통해 280일 만에 태어나는 아기로써 언급된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의 서술을 통하여도 알수 있는 사실입니다.

이 두가지 사실은 100% 하나님이시며, 100% 사람이신 예수님이 (Hypostatic Union)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어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죄없는 사람이 됨을 말합니다. 타락한 세상에서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죄없는 사람이 없음을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롬3:10).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이시며 하나님이시기에 죄없는 사람이 되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빛과 어둠이 함께 할 수 없는것 처럼,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와 함께 하실 수 없는 분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온전한 사람이시지만, 죄는 없으신 사람이 됩니다 (히 4:15). 그리고 죄 없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져 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죄 없는 사람인 예수님이 죄인인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지셨기에, 우리는 대신 죄 없는 사람이 된것이고, 죽지 않고 영원히 살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요 1:12).

예수님의 탄생의 귀중한 의미는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예수님이 이땅에 오셨다는 것의 중요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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