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가복음 10:32.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April 5, 2025. SaturDevo
공관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사역은 보통 세 부분으로 나눌수 있습니다. 갈릴리 사역과 도상사역과 예루살렘사역입니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을 3년으로 친다면, 그 삼년 대부분은 갈릴리지역에서 사역하셨고, 갈릴리로 부터 예루살렘까지 가는 시간을 많이 잡아 한주일정도, 또 예루사렘에서 행하신 한주정도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번째 자신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예언하실때는예루살렘에 거의 와 가실때쯤 됩니다. 그런데 고난과 죽음과 부활의 예언을 왜 세번이나 반복하셨을까요?
우리는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는 당시의 배경 상황을 되 집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예수님이 당시 사람들에게 어떤 분으로 생각되었는지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가이사랴 빌립보를 지나지며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3, 막8:27, 눅9:18). 제자들은 대답합니다,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유대인들은 유대 고금의 명망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간주하고 있었습니다. 삼년을 온전히 사역하시며 행하신 예수님의 능력과 권능을 소문으로만 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정치 종교 지도자들은 시기와 멸시을 섞어 예수님을 위협적인 위험 인물로 보았습니다. 배움없는 시골 출신이라고 멸시하고, 그런 그가 기적을 행하며 군중의 인기를 모으고 있으니 시기하고, 그가 폭동이라도 선동하면, 나라가 위태로워 질것이니 위험합니다. 그런 사람이 앞장서서(막10:32) 제자들과 군중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갈릴리에만 있다면, 무시하고 멸시하면 되겠지만, 예루살렘으로 오고 있다면, 위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는 제자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이적과 권능을 보며 이스라엘이 고대하여 마지않던 메시야(그리스도)임을 확신합니다. 그는 이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면, 어떤 방식이로든 이방세력 로마인들을 몰아내고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누가 크냐 (막9:34, 눅9:46)하는 논쟁을 하고, 요한과 야고보는 청탁까지 넣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들의 머리속에는 예수님이 왕이 되었을때, 누가 총리가 되고, 누가 무슨 장관이 될 것인가에만 모아져 있습니다. 그들의 그런 사고 방식에는 예수님이 하시는 고난과 죽음과 부활 예언은 결코 이해될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충성심을 내 보였지만, 베드로가 예수님으로 부터 큰 꾸지람을 듣고 난 후로는 두번 세번 하시는 그 예언에 대해 차마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이해도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째든 자신에게 맡겨지고 계획한 일을 진행 시켜 나가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 시키는데도 삼년이 걸렸는데, 왜 자신이 고난을 받고, 죽고, 또 부활해야 하는지을 이해시키려면 십년이 아니라 평생을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아셨기에, 그들에게 세번에 걸쳐 얘기해 주는데 그쳤을 것입니다. 세번은 확신을 주는 숫자입니다. 삼세번입니다. 사무엘을 세번 부르십니다(삼상3:10). 사무엘을 부르는 소리가 하나님이심을 확신시켜 주신 것입니다. 요나는 뱃속에서 삼일을 있습니다(욘 1:17). 물고기 뱃속에서 밤낮 삼일을 있으면 죽는다는 것을 모두가 입니다. 그러나 요나가 그렇게 삼일 밤낮을 있다가 살아났다는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을 확신시켜 주신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예언을 세번이나 들었는데, 아직도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과 같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고난 받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삼일 후에 부활하셨을 때에서 그 일이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분명한 의도가 있는 계획이었다는 것을 확신시켜 줍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대속의 죽음이 되게 하여,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태초의 창조 의도대로, 에덴동산 낙원에서 영원히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원래 사람을 죽는 존재로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위를 향한 타락, 앎을 얻으려는 욕망의 죄로 죽음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이 의도가 실패한 계획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시켜 주시며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태초의 창조 의도를 획복시키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의 세번의 예언과 예루살렘으로 앞서 걷는 발걸음은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이 두려하듯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는 걸림돌이 아닙니다. 우리의 무지를 책망하는 꾸지람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일그러진 원초적 삶을 안타까워하며 자신을 내어주며 까지 우리를 하나님의 원래 창조 의도대로 회복시키려는 확신이며, 위대한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