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복음 19: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April 12, 2025. SaturDevo
여리고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날 밤을 보낸 곳입니다 (눅19:5). 그러나 당시의 여리고는 예수님이 자리를 펴고 하루를 보내기에 적합한 장소는 아니었습니다. 여리고는 당시 헬라화된 도시였으며, 헤롯의 겨울 궁전이 있는 도시였습니다. 사막 가운데 있는 오아시스와 같은 도시였습니다. 마태, 마가 복음에서는 여리고를 떠나며 눈먼 바디메오의 눈을 뜨게 해주는 일만 언급하며, 여리고에서의 사건을 간단하게 다룹니다. 그러나 누가는 삭개오의 사건을 길게 언급하고, 그의 집에서 유숙하였다는 것도 말하고 있습니다.누가는 마태와 마가와 달리, 여리고로 들어가는 길에 장님을 고치십니다. 당시 여리고는 두곳이었다고 합니다. 구여리고와 신여리고로 삭게오의 집은 신 여리고에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은 당시 최고의 현대식 호화주택에서 연회를 갖고, 난생 처음으로 최고의 호텔식 잠자리를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어떤 주석은 두곳의 여리고를 마태, 마가의 나오며 장님을 고쳤다는 것과, 들어가며 고쳤다는 누가의 주장이 일치한다고 설명합니다. 여리고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도시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향락의 도시라고 할 수 있는 라스베가스 같은 곳에서 하룻밤을 지낼 생각을 하셨을까요? 물론 뽕나무 위에까지 올라가 예수님을 보기를 간절히 원했던 삭개오를 만난것이 문학적 스토리를 이어가는 원인이 되었지만,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은 우연한 일로 볼 수 없습니다. 우연처럼 보이는 이런 사건에서도 의미를 찾고 연관성을 상고해 볼때,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영적 성장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예수님이 여리고에 들어가셔서 유하셨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크게 세가지의 연관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여호수아의 여리고 정복입니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에 첫 싸움은 여리고성 정복이었습니다. 철옹성으로 알려진 여리고 성이 공성전없이 무너져내리게 한 여호수아는 가나안 온땅의 정복을 이룩할 수 있었습니다. 그 철옹성 여리고는 진멸되고 무너져 내리지만 그곳에서 살아 남은 사람은 라합과 그의 가족이었습니다. 여호수아 시대에 여리고가 죄악의 도시였던것 처럼, 예수님 시대에도 여리고는 유대땅안에 있는 이방땅으로 부와 사치의 도시였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 먼저 죄악의 전초 기지인 여리고로 뚜벅 뚜벅 걸어들어가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죄인중에 죄인인 세리를 구원하십니다. 여호수아와 예수는 같은 의미의 이름입니다. 여리고에서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여호수아를 볼수 있고, 라합을 볼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의 승리를 확신으로 기대할 수 있게 됩니다.
두번째는 여리고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한 곳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은 구불 구불하고 거칠고 울통불퉁한 유대광야의 길로 범죄가 많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만난 사람의 이웃은 고귀한 핏줄을 타고난 레위인도 거룩한 제자장도 아니었습니다. 약하고 핍박받고 힘없는 사람의 이웃은 그와 함께 하여 주고, 그를 위하여 기꺼이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죄인의 친구 멸시받는 사람들의 이웃은 다름 아닌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느냐는 율법교사의 질문에, 가장 큰 계명 두가지를 말씀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눅10:27). 예수님은 이말씀에 덧 붙여,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마12:31)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이라는 큰 전투,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앞두고 여리고에서 이 계명을 말씀하시며, 선한 사마리아인의 실예를 기억나게 하십니다.
세째는 여리고는 장님의 눈을 뜨게 하신곳입니다. 여리고는 해수면보다 905 피트 낮은 곳입니다. 그런가 하면 예루살렘은 해발 2500 피트의 높이에 있습니다.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은 천미터 높이에 있는 곳입니다. 제일 높은 곳을 올라가시기 위하여 제일 낮은곳에서 제일 작은자을 만나시어 자비와 사랑을 베푸시는 예수님을 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10:44-45). 예수님은 영적으로 눈먼자들이 눈을떠서 예수님이 이루실 일들을 보고 이해하고, 믿고 구원받으시길 원하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 라고 직설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여리고의 사역은 우연히 지나는 길에 이루어진 일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예수님이 지난 삼년동안 하신일을 기억하게 하고, 다시한번 확신시키 주시는 의도된 가르침입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눅2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