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탄생 (마태복음)-1

마태복음 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

December 23, 2025. SaturDevo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는 마태복음 1:18-2장 마지막까지에 걸쳐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모든 크리스찬들에게 친숙하지만 또한 여러가지 의문도 야기 시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복음을 나누다 보면 생각치도 않았던 질문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이글에서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음미해 보며, 어떤 의문이 들게 하는지, 그리고 그 의문들을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써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18절은 요셉과 마리아가 정혼한 사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결혼하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에 의해 임신한 사실이 알려집니다. 그리고 요셉은 그 사실을 알게 되고, 마리아와 조용히 이혼하여 그녀와의 관계를 정리할려고 합니다. 성경을 읽는 크리스천들에게 익히 알려진 내용입니다.

마태는 마리아가 성령에 의해 임신된 사실이 알려졌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알려졌다는 말은 없습니다. 요셉에게만 알려졌는지, 몇몇 측근들에만 알려졌는지? 요셉이 그녀를 부끄럽게 하지 않기 위하여 ‘가만히 끊고자’ 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동네 사람 모두에게 알려진 것은 아닌것 같습니다. 그리고 요셉을 ‘의로운 사람’으로 표현한 마태의 의도에 대한 의문입니다. 요셉이 의로운 사람이라는 말은, 그가 하나님을 잘 믿는 신실한 사람이라는 표현인지, 마리아를 동정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인지? 알려진 사실은 분명히 다른 남자와 통정에 의한 임신이 아니라, 성령에 의한 임신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요셉이 의롭다는 말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마리아가 하나님의 여자로 취급하여 마리아를 하나님께 양보한다는 의미일까요? 아니면 성령에 의한 임신을 믿지 못하고 오늘날 우리들 처럼 의심하였지만, 마리아를 불쌍히 여겨 가만히 끊을 려고 한 것일까요? 성경은 이런 것에 대한 의문을 분명하게 대답해 주지는 않습니다.

18-19절의 갈등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 납니다. 이것은 성경이 또는 하나님이 흔히 쓰시는 문제 해결 방법입니다. 천사가 꿈에 이야기해준 모든 것을 요셉은 순순히 받아들입니다. 천사는 마리아의 임신에 관한 사건 뿐만 아니라, 태어날 아기의 존재와 그 미래까지 말해 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믿고 순종하는 사람으로 의로운 사람일 것입니다. 이런 추측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잘 믿고 따르는 우리와 요셉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오늘날 우리 중에도 요셉만큼 의로운 사람이 많이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교훈이 말씀 속에서 크리스찬이 배울수 있는 교훈이라면, 성경을 쓴 마태의 의도는 예수님의 탄생이 오래전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이 방법은 마태가 쓰고 있는 예수님의 얘기가 자기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라는 것을 강조하는 방법입니다.

여기서 떠오르는 질문은, ‘마리아와 요셉은 어디 살았지?’입니다. 누가 복음과 일치하지 않는 것 같은 부분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나사렛에 살던 마리아와 요셉이 인구조사 때문에 그 곳에서  베들레헴로 여행하여 머물렀다고 하는데, 마태복음에 따르면, 마리아와 요셉은 어디서 왔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정혼하고, 임신하고 아기낳고 까지 일년 이상 그들이 태어난 이래 그곳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요셉은 마리아와 잠시 갈등하였지만 주의 사자의 간섭으로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예수님을 낳고 특별한 일 없이 베들레헴에서 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 2장은 예수님이 헤롯이 통치하는 동안에 태어나셨다는 것을 기록합니다. 이 이야기가 동방박사 이야기 입니다. 어느날, 별올 보고 동방에서 왔다는 현자라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나타나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마 2:2)고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유대인의 왕이 나셨다는 말은 삽시간에 온 예루살렘에 펴졌을 것이고, 유대의 왕인 헤롯도 민감하게 받아들인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유대인이 아닌 에돔인인 헤롯은 유대 율법을 잘 알고 있는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불러, 유대인의 왕이 났다는 말에 대해 물었을 것입니다.  

헤롯의 질문이 독특합니다.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마2:4). 헤롯은 ‘유대인의 왕’과 ‘그리스도’를 같은 뜻으로 알았을까? 마태는 왜 이렇게 기록했을까? 의도가 있는 질문인가, 그냥 기록하다가 그렇게 썼을까?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헤롯에게 어떻게 설명해 주었을까?

서기관들과 제사장들은 ‘유대인의 왕이 났다’는 말을 제대로 이해했기에 미가서 5:2절의 베들레헴을 찾아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것을 벌써 알았다는 것인데 그들의 반응은 기록되지 있지 않습니다. 마태가 예수님이 메시야(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아는 유대인들의 반응은 여기에서 필요한 내용이 아니라 생략했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미가서 5:2절은 말씀의 성취를 강조하는 마태복음서의 특징으로 나타납니다.

베들레헴을 알아낸 헤롯은 동방박사들을 불러 그들에게 그 장소를 알려주며, ‘유대인의 왕’ 예수가 언제 태어났는지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2:7) 알아냅니다. 별이 나타났다는 동방박사들의 말은 평범한 부부에게서 난 예수님이 특별하게 간주되는 순간입니다. 헤롯은 그들에게 아기를 찾거든 자기에게도 알려주어 자기도 가서 경배하겠다고 말하며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냅니다. 그런 그들은 앞에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2:9)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2:10)며 아기예수를 보고 세가지 보물을 선물하며 경배합니다. 그후 그들은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꿈의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갑니다.

많은 사람들은 세명의 동방박사 이야기를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박사들 (Wise men)’이라고 표현하고 있을 뿐, “셋”은 없습니다. 말씀을 자세히 보고, 정확히 알아가야 할 필요성을 실감합니다.  별은 왜 그들을 잘 인도하다가 예루살렘에서만 길를 잃게 만들었을까? 혹시 헤롯과 동방박사들의 이야기를 넣기 위한 문학적 기교는 아니었을까? 성경이 기록하고 있지 않은 것을 가정하고 상상하여 문제화 시키는 것을 성경을 바로 보는 자세는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성경을 ‘연의’라고 주장하게 하는 단초를 제공합니다.

동방박사들이 그들의 고국으로 돌아가고, 헤롯은 그들이 자기에게 들르지 않고 돌아간 사실을 알게되며 분노합니다. 그래서 헤롯은 그들에게서 얻은 정보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베들레헴과 그 지경의 사내아이들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라 합니다. 그러나 이 갈등도 꿈에 나타난 주의 천사 (하나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헤롯의 계획을 알려줌으로 애굽으로 도망감으로 해결됩니다. 그리고 이 사건도 여지없이 마태는 예레미야를 인용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강조합니다.

그리고 또, 주의 사자의 현몽으로 헤롯이 죽은 사실을 요셉에게 알려주고, 요셉은 마리아와 예수를 데리고 유대로 돌아지만, 헤롯을 이어 헤롯 만큼이나 잔인하고 사악한 , 그의 아들 아켈라오가 왕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나사렛으로 가서 살게 됨을 말하고 그리고 또 여지없이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 말씀의 성취를 강조합니다.

이렇게 자세히 읽어보면, 여러가지 질문이 (특히 누가 복음의 이야기와 비교하여) 고개를 듭니다. 한 가지 특징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첫째 사건 사건 마다 갈등을 해결해 주는 것은 꿈에 나타나는 주의 사자 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사건 사건의 이루어짐을 마태복음은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라는 측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마태복음만 읽고 예수님의 탄생을 이해하려고 할때 우리를 어지럽히는 의문들입니다. 우리는 복음서를 공관복음이라고 말합니다. 같이 보아야할 복음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을 이해하려고 할때, 누가 복음의 예수님 탄생 부분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로마서의 말씀은 이런 부분에서도 떠오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통하여 마태의 가르침만 듣기 원한다면, 마태복음으로 충분하겠지만, 저자를 넘어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뜻까지 듣기 위해서는 누가복음의 예수님 탄생 이야기도 보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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